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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Oct
음악에세이 대중은 스타를 만들고 스타는 시대를 바꾼다작성자: anonymous 조회 수: 2213
아홉 번째 이야기-대중은 스타를 만들고 스타는 시대를 바꾼다.
먼저, 스타란 무엇인가. 스타란 비단 연예인만이 아니다. 고도로 산업화, 조직화되고 개인의 위상이 초라해질수록 사람들은 스타를 원하고 스포츠, 정치 등 온갖 분야에서 스타들이 뜨고 또 사라지고 있다. 경기장에 소녀 팬들이 몰려드는 것이나 매스컴에게 각광받는 정치인-예를 들어 '청문회 스타'등으로 불리우는 사람, 범죄 조직과의 싸움으로 주목받는 '스타 검사', 또 홍정욱군 같은 이는 공부를 잘했대서 스타, 진급을 빨리 해서 전국 샐러리맨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봉급장이 스타, 양심선언을 했대서 공무원 스타.... 이제는 정말 밤 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많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대중예술의 스타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이들이 스타로 대우받는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 이룬 업적에 대한 부산물에 불과한다. 길에 나가니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더라 하는 것은 자신의 일과 사실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한 일년 지나니 이젠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졌더라 하는 것도 별로 서운해 할 일이 아니다.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해서 경기가 안 풀리는 것도 아니고 소송에서 지는 것도 아니다. 막말로 농구팀 감독이 누가 괴성이 많이 나오느가에 따라 주전 멤버를 정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대중예술은 그 인기가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물론, 대중예술인을 인기에만 집착하는 속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예전에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가 주인집 따님이 나를 보곤 사인을 요청했다. 그런데 '오빠 제발'하는 말투가 거슬렸던지 주인아줌마가 네가 왜 저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느냐. 저 사람들은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너희가 없으면 죽는거다. 하고 소릴 질렀다. 필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들어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난 음악을 할껀데 하고. 아마도 선거 때가 되면 코가 땅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는 의원님들에게 나 유권잔데 하고 호통치던 버릇 때문인지 팬인데 하면 아이구 감사합니다. 하고 두 손으로 공손히 사인하는 태도를 기대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꽤 있다. 얼굴을 알아
본다는 것만으로 팬의 자격이 생기는지도 달 모르겠고 거만한 것보다야 낫겠지만 공손함이 왜 아티스트의 필수인지도 모르겠다.
인기가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대중예술계
어쨌든 인기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치더라도, 그놈의 인기가 아직도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나보다. 필자의 선배인 한 의사는 우연히 매스컴을 좀 탔는데, 환자들이 유명한 의사라 해서 치료에 협조도 잘 하고 병원 내의 업무도 편의를 봐줄 뿐 아니라 손님도 많이 몰린단다. 대중예술계는 오죽하겠는가. 아무리 흥행에 관심이 없는 예술지상주의 감독이래도 자기집 앞마당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는 이상, 필름값이라도 있어야 할 게다. 비록 흥행에 깨졌다고 해서 영화를 집어치우지는 않는다고 하더래도 말이다. 문제는 이 '인기'라는 후광이 사라진 다음의 일이다. 흔히 연예인은 앞날의 보장이 전혀 없는, 내일이 없는 직업이라고 한다. 그래서 본인들은 "메뚜기 한철인데..."라고 자조하고 대중은 "인기 떨어지면 너네들이래 봤자..."라고 하는 이상 예술가는 좋은 작품만들기 어렵고 대중은 좋은 작품 즐기기 어렵다. 예술가는 앞날이 불안해도 평생 지향할 목표를 가지고 일생을 투자하겠다는 집념을 가져야 하고, 대중은 "쟤 요샌 찌그러졌다"며 하고 통쾌해 하기보다 따뜻한 시각을 가지는 게 좋지 않을까 은퇴라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본인이 안하겠다는 거야 할 말 없지만 은퇴니 컴백이니 반복하느니 그냥 쉬고 싶은 만큼 쉬고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놀드 파머는 "은퇴란 축구선수나 하는거지..."하였다. 골프선수가 왜 은퇴를 하느냐는 거였다. 그가 불세출의 스타인 것은 그가 정말로 '골퍼'답게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가 비록 최근 경기에서 우승을 하진 못해도 사람들은 정말로 경기를 '즐기는'그의 스포트맨십에 찬사를 보낸다. 마찬가지로 예술인 역시 예술가답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거장들은 만년에도 불후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심지어 록 밴드 조차 롤링 스톤즈, 딥 퍼플은 아직도 정력적이고 에어로스미스는 심지어 지금이 전성기인 듯한 인상을 준다. 자 이런 은퇴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나마 몇 년 활동한 사람들 얘기고 요즘처럼 100일 가수니 하는 문제에 이르면 그나마 할 말
이 없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 답이 여기 있다.(야한 얘기니 애들은 가라.)
메리 : 얘, 제인아 너는 밤에 있잖아 어떤 체위로 하나?
제인 : 음, 나는 항상 정상체위로만 해.
메리 : 어머나머나머나... 얘 그럼 지루하지 않니? 무슨 재미루 그걸 해? (으앗 너무 야하다)
제인 : 훗훗 괜찮아. 대신 나는 매일밤 남자를 바꾸거든.
메리 : (띠용~)
농담 속에 뼈가 있다고 이 이야기 안에 진실이 있다. 대중은 한 스타가 발전해 나가거나 변신해 나가는 노력이 보이지 않으면 바로 등을 돌려 버린다. '체인징 파트너'해 버리면 또 잠깐이나마 참신한 새 얼굴을 즐길 수 있다. 대타는 얼마든지 있다. 원하는 만큼 줄을 서 있다. 그러나 참신한 신인의 등장만큼이나 중견과 베테랑들도 중요하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얘기다. 어느 나라든 국민이 무조건대책 없이 오랜 기간 사랑하는 스타가 있다. 마릴리 먼로나 제임스 딘은 요절함으로써 영원히 가슴에 남았다고 할 수 있지만 존 웨인은 살만큼 살았어도 사랑받았고 프랭크 시나트라는 아직도 쨍ㅉ하다. 프랑스인은 아직도 에디트 피아프와 이브 몽탕을 잊지 못하고 일본인은 '노래하는 종달새' 미소라 히바리를 국가의 상징으로 추앙했다. 우리가 이런 스타들을 많이 갖지 못한 것은 본인들의 노력 부족도 있지만 한 번 떴다 하면 염증이 날때까지 우려먹는 매스컴과 매니지먼트의 잘못도 있다. 얼굴만 봐도 지겨울 정도로 텔레비전에 나가려니 충전할 시간이 없는 건 당연하다.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면 방송에서 은혜 (뭐가?)도 모르고 건방져졌대고 사람들은 뜸한 걸 보니 갔나보다 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단 말인가. 대중의 책임도 있다. 몇가지 예를 들자. 변진섭의 경우, 그는 빛나는 스타성 보다는 한경같음으로 연상되는 발라드 가수다. 그 역시 백만이니 하는 숫자 놀음보다는 꾸준한 자기 음악을 원했다. 그런데 억지로 가수왕이니 하는 월계관을 씌우며 떠들썩하게 굴더니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고정 팬들과 더 익은 노래들을 하고 있음에도 외관적으로 예전에 비해 판매고가 줄었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하려 한다. 신승훈 역시 연속 백만이니 하는 문구에 눌려 있다. 마치 전국민이 오냐 네 놈이 언제 그 자리에서 내려오나 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그 만큼 했으면 인기의 기복이라는 사슬의 논쟁에서 그를 예외로 예우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운동경기에서도 영원한 챔피언은 없다. 장수 챔피언이 젊은
도전자에게 패하고 내려오는 것을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사른 스포츠 맨이라고 찬양하든, 전성기 때 깨끗하게 그만둘 일이지 하고 비웃든 본인의 자유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가는 '인기'의 전성기와 '음악'의 전성기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역량 있는 아티스트가 부족한 판에 '인기'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해서 베테랑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의 향기를 무시하고 너 요새 찌그러졌지 하고 키득대는 분위기로 간다면 대중 스스로의 손해다.
예술가는 '인기'의 전성기와 '음악'의 전성기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한 예를 들자. 요즘 세대는 스캔들에 둔감해져간다고들 한다. 그것을 기성세대는 도덕성의 상실이라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필자가 보기엔 구별해야 할 것을 구별 못하던 멍청한 전세대에 비해 요즘 친구들이 똑똑해져가는 것이라고 본다. 외국의 경우 여배우가 누구누구와 어떻다고 해서 활동의 존립 여부마저 위협받는 일은 없었다. 연예계 속담 중에 '내가하면 사랑, 남이 하면 불륜이요 내가 하면 연애, 남이하면 스캔들'이란 말이 있다. 사람 사는 곳에 늘상 있는 일을 작품과 굳이 연결지을 필요가 없다. 그저 점잖게 눈쌀 한 번 찌푸릴 일을(왜? 남의 일이니까)마치 연예인이기 때문에 천인공노할 대역죄를 저지른 것으로 호떡집에 불난 것 마냥 떠들어서 생매장을 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집단적 광기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불세출의 여배우 정윤희도 날려 보내 평범한 가정주부로 만들었다. 그 당시 매스컴의 치졸한 문구는 지난 일을 다시 들먹이지 않기 위해 인용하지 않지만, 어린 내 눈에도 참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외국의 경우 정치인의 도덕성에 대해선 냉혹한 반면 우리는 그 반대이질 않는가.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이 모방할 우려가 있다고 믿나 본데, 자식들이 아니라 흉내내기 잘하는 원숭이들을 키우나 보다. 굳이 연예인을 보지 않더라도 세상엔 보지 말아야 할 것, 듣지 말아야 할 것, 흉내내지 말아야 할 것은 많다. 판단은 본인들의 몫이고 가정교육이 가장 가까운 지팡이, 그 다음이 학교일 게다. 연예인이 아니고. 대중예술가에게 모범적 인간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물론 예술가라고 해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해도 된다는 뜻도 아니고 모범적 인간이라고 해서 예술 못하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양복장이 샐러리맨 차림으로 절을 구십도로 해야만 한다면 티브이 보지 말고 노래방에서 직장인 노래자랑이나 볼 일이다. 우리나라 가수들의 옷차림은 세계 어느 나라 가수들의 그것과 비교해도 매우 일반인 복장이다. 조금만 요란하면 사치, 조금만 짧으면 음란, 조금만 길면 퇴폐다 (참 박정권이 사람 여
럿 잡았다). 결과적으로는 대중 스스로 손해다. 재미 없고 그게 그거인 방송을 봐야 한다. 외국의 쇼 프로에서 당시 한창 뜨던 밀리 바닐라가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틀즈보다 위대하다라고 떠들자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박수를 쳤다. 그들의 객기와 시건방짐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박진영이 <김한길과 사람들>에 나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난 조용필보다 위대하다라고 했다간 아마 건방지다고 돌이 날아올꺼다. 예술가란 접시를 앞에 놓고 이건 빈대떡이라고 우길 수 있는 부류들이다. 당신이 빈대떡이라고 동조할 필요는 없다. 그저 보고 웃으면 된다. 그걸 좀스럽게 '세상이 다 접시래는데 넌 왜 건방지게 튀어'하고 주눅들여 봤자 당신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데 도움될 게 없다.'노틀담의 꼽추'를 아실 것이다. 주인공 콰지모도는 종지기를 하는 추하게 생긴 꼽추다(영화에서는 앤소니 퀸이 역사에 남을 명연을 했다).그런데 카니발이 열리자 사람들이 콰지모도를 카니발의 '왕'으로 추대를 해 행렬을 벌이고 아가씨들은 키스를 퍼붓고 남자들은 '예,예'하면서 떠받든다. 천덕꾸러기 콰지모도는 황홀해 할 수 밖에. 그 꼴을 보고 실컷 즐긴 뒤 다음 날이 되자 막상 콰지모도는 아직도 '깨몽'을 하지 못하고 헤매는데 사람들은 어느덧 원래대로 돌아가 쟤 뭐냐하고 비웃고 어제의 그 거리엔 펭귄만이 날아다니더란다. 좀 과장하자면 스타란 그런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예쁜 옷을 입고 화려한 조명받는 게 좋아서 연예인 하겠다면 운이 좋아 잠시 빛 본다 해도 곧 날으는 펭귄을 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인기란 '부산물'이란 생각을 해야 한다.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마음껏 표현하도록 대범하게 허용하고 (말하고 나니 화가 난다. 헌법에도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인내를 갖고 지켜보면 대중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갈고 닦인 '빅'스타를 가질 수 있다. 그리하여 대중은 스타를 만들고 스타는 시대를 바꾸는 것이다.
글.신해철(그룹 N.EX.T의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