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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Oct

사랑의 날개는.. 사랑의 날개는 너에게 3

작성자: 관리자 조회 수: 2384





나의 도시 스케치 


이 변화한 거리의 골목들 나는 기억한다. 낮에는 학원가였다가 밤이면, 우리가 몰려다니며 시시덕거릴 수 있는 편한거리. 예쁜 소녀들은, 값이 헐한 액세서리를 걸고 다니며 노전에서 산 가방을 출렁거리며 예쁜 자주색 스타킹을 신고 눈부시게 걷는 거리. 큰마음 먹고 며칠을 벼르다 겨우 마련한 돈으로 영화표를 사고, 영화가 끝난 뒤 체리쥬스 같은 칵테일 한 잔이면 이 세상 어떤 사나이보다 멋있던 우리들의 거리. 전경과 헤비메탈과 장미꽃다발이 있는 거리. 가끔, 아니 아주 자주, 우린, 그 거리 한복판에 서서 마구 고함 지르며 달리고 싶었다. 꺼져버려라, 시험아, 학점아, 꺼져버려라. 뭔가 자꾸만 가르치려 드는 어른들과 간섭만 하는 선생들아, 꺼져버려라. 좋은 걸 좋다고 나쁜 걸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아. 고함을 지르면 좀 시원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샤워를 하듯 땀에 흠뻑 젖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야, 너는 너지. 그래, 나는 나다-, 그리고는 크게, 아주 크게 웃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일 없는 채로 밤늦은 전철을 타고,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라는 전철역내의 아나운서멘트를 들으며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를 달리던 전철이 지상으로 올라오면, 우리의 도시가 차창으로 보였다. 어듬 속에 병든 짐승처럼 웅크려 있는 우리들의 도시. 도시의 등불들은,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강물을 비추며 흔들리고, 우리도 흔들리며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나는 꿈을 꾸었다. 나의 도시 위로, 한 떼의 청둥오리가 서툴게 날아가는 것을... 그 서툰 날개가 꼭 나의 모습 같아 나의 베개는 흥건히 젖곤 했다. 나는 언제나 진지한 인간은 아니지만, 그 순간은 언제나 진지했다. 나는, 꿈 속에서, 나의 꿈에 대해 진지해지며, 다음날, 다시 거리로 나갈 것이다. 그 거리, 전경과 헤비메탈과 장미꽃다발이 있는 그 거리로. 


1990. 10. 14. 날씨, 잘 모르겠음 


오늘은,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 날이다. 글쎄, 일기란, 꼭 노트에 날짜를 적어가며 적는 것일까 그런 일기를 쓰기로 결심한 것은 사실, 매일 내 생각을 정리해 보겠다는 뜻이다. 새삼스럽게 일기를 쓰려고 결심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유가 뭐냐구? 자, 난 그 이야길 슬슬 시작하려 한다. 오늘, 나는 아침 스케줄이 있어 일찍 일어났다. 졸린 눈을 비비며 몸이 피곤해서 침대 속에 푹 파묻혀 있다가 안되겠다 싶어 머리맡에 있던 잡지를 뒤적 거리기 시작했다. 잡지내용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순전히 잠을 깨기 위해 잡지를 뒤적였으므로 그저 눈에 들어오는 대로 책장만 넘길 뿐이었다. 광고, 에븐 여자모델, 비만퇴치, 피부관리, 어느 퇴물정치가의 스캔들, 유부남과 연애하는 처녀의 체험수기, 맹인고학생을 사랑한 여대생의 감동풀스토리, 광고, 인테리어 365일. 잡지는 그냥 그저 그렇게 무덤덤하고 적당히 선정적이고 적당히 화려하고 뭐, 우리나라 전형적인 잡지였는데, 갑자기 내 눈을 끄는 영화광고. 영화? 나는 평소에 시간이 없어 영화를 잘 보는 편이 아니다.그런데 그 영화광고는 갑자기 낸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볼륨을 높여라', 그 영화제목은 볼륨을 높여라였다.영화제목처럼, 나는 볼륨을 높이는 대신 눈을 크게 뜨고(무슨 반사작용이람. 아무튼, 사람은 선전조작엔 그냥 순한 짐승처럼 시킨대로 하고 만다니깐)영화광고를 읽기 시작했다. 그 영화는 어는 해적 DJ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소 때는 말도 잘 못하고 남 앞에 나가면 수줍음만 타는 주인공은, 우연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수신기로 라디오전파에 끼어들게 된다. 그리고는 평소에 자기가 잘 하지 못했던, 아니 잘할 수 없었던 말들을 마구 지껄이게 된다. 그 목소리는, 라디오전파를 타고 전국에 전해지게 되고 청소년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게된다. 그가 하는 말은 삽시간에 유행어가 되어 청소년들 사이에 열병처럼 번져간다. 이 심야라디오 전파에 침범한 해적DJ. 그러나 그가 하는 말들, 이 말은, 특별한 말이 아니었다. 다만, 보통 청소년들이 평소에 느꼈던 것들. 어른들의 간섭과 참견, 빡빡한 학교생활, 그리고 우정, 사랑, 그들만의 말못할 이야기를 이 해적DJ는 익명성의 보호 아래,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말은, 청소년들의 답답한,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말이 되었고 평소, 억눌려 있던 심정을 하소연할 때가 없었던 청소년들은 마치 구세주의 메세지인 양 그 말을 기다린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목욕탕으로 달려가 휘파람을 휙휙 불며 치약을 짜고 물을 틀었다. 푸카 푸카 칫솔질을 하며 나는 갑자기 신바람이 났다. 그래, 그거다. 솔직하게, 있는 대로, 담담하게 하면 되는 거다.서로 마음이 통하면 되는 거다. 무슨 소리냐구? 서로 마음이 통하면 된다니, 연애하냐구? 그래, 나는 연애한다. 매일 두시간, 심야에 데이트를 하는 연애에 빠진 사나이다. 나는, 잠옷을 침대 위에 휙휙 집어던지고 속옷바람으로 방을 서성거렸다. 내 발에는 경쾌한 리듬이 실려 있었다. 누나가 날 보러 왔다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런 누나에게는 나는 말했다. "내일부터, 나는, 매일매일 내 일기를, 전국에 보낼 거야. 솔직한 내 일기를. 누나, 신나지 않어? 신나지? 신나지!!"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다가 난 갑자기 몸의 리듬을 깨고 섰다. "근데 말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을 향해.난, 아직은 겁나.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볼륨을 높여라'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자기를 감추고 말하지는 못하고, 어는 정도 정해진 라운드 안에서만 애기를 해야 하는 나, 그리고 아직은 세상이나 사람에 대해, 자신있게 이건 이거다. 저건 저거다 말할 자신도 없는 나. 그런 나의 고민이 이런 일기를 쓰게 되리라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을 덮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가. 그러나, 나는 하고 싶다. 내가 느낀 것 본 것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오늘도, 도시는 등불을 켜고, 사람들이 잠이 들 즈음 나는 말할 준비로 잠을 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외롭다-라고 중얼거리다가 그렇지 않다고 맘을 고쳐먹은 다음, 일기를 쓰게 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과 내가 차마 하지 못했던 말, 그리고 내가 한 말들에대해.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될, 연애에 빠진 사나이가 될 것이다. 


1990. 10. 15. 날씨, 맑았다가 왠지 흐린 것 같음 


"살아왔던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우리들." 나는 제법 폼을 잡으며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밤의 디스크쇼DJ가 된걸 축하한다는 축전을 앞에 놓고, 나는 긴장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낮선 스튜디오. 그리고 새로운 일로 만난 새로운 스들. 나는 '우리는 하이틸' 이라는 라디오 AM프로를 진행하다가 그만 둔 지 거의 일년만에 다시 헤드폰을 끼고 마이크 앞에 앉게 되었다. 캠페인이 나가고 광고, 그리고 열시를 알리는 시보, 그런 다음엔, 보통 시그널 음악이 나가야 하는데, 우리들은 신해철의 자기고백이라는 좀은 쑥스럽고 거창한 내 이야기를 먼저 내보냈다. 나는 정리한 원고를 몇번 읽어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난리람, 나는 겸언 쩍어졌다. 나는 스물셋 동안, 음악을한 것 외엔 그냥 평범한 스물셋이었는데. 자기고백이란 걸 하자니 왜 이리 자꾸 웃음이 나는지, 그리고 긴장까지 합하여 마음이 공연히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말이 끝나고 시그널이 나가고 오프닝. 나는, 시골소녀가 보낸 짧은 편지 한장을 읽어주었다. 오프닝 멘트: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갑니다. 이삭줍기가 뭔지 아세요? 추수가 끝나면 우리 식구들은 모두 나와 추수하다가 떨어진 이삭을 줍습니다. 이렇게 떨어진 한 알이라도 다 챙기는 게 농사꾼의 마음이라고 저의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을 쓴, 시골소녀는, 가을 걷이가 끝난 노을 지는 들녁에 나가서 이삭을 주웠으리라. 땅에 떨어진 이삭 한알 한알을 주워 올리며, 수고하는 마음의 소중함을 알았으리라. 나는, 밤 열시와 열두시 사이의 여의도 스튜디오에 앉아 이 편지를 읽으며,그 소녀와 소녀의 식구들을 잠시 떠올렸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난 나는 농촌의 생활이라면, 한가한 전원풍경밖엔, 사실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러나, 첫방송이 나가는 날이라서 그럴까. 나는, 내가 전혀 모를 곳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곳 사람들과의 교감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내 목소리는, 나를 떠나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머리말의 라디오가 유일한 위안인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골소녀의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했다. 우리 PD선생님의 말씀, 가장 좋은 심야 FM방송이란, 듣는 사람을 잘재우게 만드는 거다. 우리 PD선생님은, 이방송을 들으며 사람들이 좋은, 편안한 잠 속으로 들어가기를 꿈꾸시는 거다. 근데 나는 다르다. 첫방송을 내보내며 내가 꿈꾸는 것은, 이 시간에 깨어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깨움의 시간을 마련하는 거다. 나는 묻고 싶었다. 그리고 대답하고 싶었다. 여러분, 깨어 있고 싶습니까, 그러면 이 청명한 새벽을 같이 깨어 있습시다. 여러분, 잠들고 싶습니까, 그러면 아주 편안한 꿈을 꾸며 잡듭시다.라고. 


1990. 10. 16. 날씨, 모처럼 맑음. 


1990. 10. 17. 날시에 대해서 매일 적는 것도 얼마나 무료한 일인가! 


이런 엽서 하나 "어릴 때, 어머니는 저에게 자라서 착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착한 사람이 되는지 저는 잘 몰랐지만, 착한 사람이 되려고 무척 애를 썼죠. 그런데 요즘 어머니는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엘 가야 한다구요. 그래서 언젠가 저는 어머니에게 여쭈어보았습니다. 착한 거랑 공부 잘하는 거랑은 어떻게 다른 거에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얘, 넌 착해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니, 요즘 세상엔 영악해야 잘살지. 착해빠져가지고는 아무짝에도 못쓴다. 신해철씨, 정말 저는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땐 착하게 살라고 했다가, 어떤 땐 착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니. 그리고 공부,공부,공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라고 정답을 알 리가 있나-, 나는 이 엽서를 읽으며, 서툰,나의 이야기가 이 친구에게 도움이 될까, 안 될까를 먼저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해서 용기를 주어야겠는데...그리고 방송에서는 이렇게 얘기를 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건, 그냥 다 우리더러 잘 되라고 하는 말씀이시죠. 그것만 이해한다면, 그냥, 어른들이 하는 얘기, 다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다까. 그런데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그런말 듣지 마세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살아가세요!! 그렇지 않은가. 물론 세상은 영악해야 잘 살 수 있다. 영악하게 눈치껏 줄을 잘 서야 버스라도 빨리 탈 수 있다. 영악하게 상황 돌아가는 걸 잘 알아야 출세를 할 수 있다.착하게, 있는 그대로, 배운 대로 산다면 그 사람은 사회 속에서 도태되고 만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꿈은? 우리들이 가꾸고, 그것이 옳다고 느끼고 생각한 꿈들은? 그리고 우리가 젊다는 것의 의미는? 아니다,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꿈을 소박하게 가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지도 모른다. 스튜디오를 나오면서 나는 믿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손발을 씻고 세수를 하고 우유를 한자 따라 마시며, 그러다배가 고파, 라면을 하나 끓여 먹으며 나는 믿고 싶었다. 오늘도, 하늘엔 별이 떴을까. 


1990. 10. 19. 날씨, 흐리고 비 옴 


며칠째,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저는 창가에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바람은 창을 덜커덩거리게 하고 지나갑니다. 그럴 때마다 빗물은 내 창에 스며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소식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는 건, 제 사랑에 대한 저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식이 없는 건 그사람이 나네게 한 약속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랑의 얼굴을 한 그대여, 그대가 떠나간 자리마다 그대를 불잡으려고 했던 나의 욕심이 빗물처럼 스며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비가 개이고 바람이 그쳤을 때 저는 저 숱 창을 떠났습니다. 그대가 떠나고 제가 떠난 그 자리, 그 자리는 처음엔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투명한 물방울들이 개울을 이루고 강물로 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강물이 흐르는 소리, 그것이 그대의 노래였고 저의 노래였습니다. 오늘, 나는 이런 연서를 띄워보냈다. 누구, 특정한 누구에게 보낸 게 아니다. 내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들어올 나의 사람에게 띄워보낸 것이다. 히히, 너무 편지를 잘 썼나? 가끔은, 그산해지고 싶은 남자, 신해철입니다. 


1990. 10. 19 날씨,흐림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라고 어느 재벌회장님이 그랬다. 근데, 세상이 넓은 건 확실한데 누구에게나 할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 회장님은 또 "역사는 꿈꾸는 자의 것" 이라고 했는데, 꿈도, 글쎄, 꿈꿀 수 있는 기반이 있는 사람한테나 가능한 일 아니까. 젊은놈이 너무 비관적이라구? 젊은데 할일은 왜 없고 꿈꿀 기반이 없다니, 그 무슨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냐구? 양락이아저씨 말마딸나 삼월이 빨래하다 미끄러지는 소리냐구? 그런 소리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말 글세, 할일이나 꿈도 좋지만 그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 아닌가. 우리만 해도 그렇다. 할일이나 꿈-, 이건 단 하나의 길로 통한다. 그 길, 그길은 대학이다. 일테면 성적순이다. 대학을 나와야 번듯한 할일을 생각해볼 수 있다. 꿈, 고작해야 대학을 잘 들어가고 잘 나오는 거다. 그 나머지 것, 아니 어쩜, 그 나머지 것이라는 게 진짜인지도 모르는데 그나머지에 대해 애기를 한다거나 생각을 해본다거나 하는 건 일종의 반역에 속한다. 사실 반항이라면 좀, 온건해 보이겠지만 이건 숫제 체제이탈자 취급이다. 조용필아저씨 노래의 가사처럼, 나는 산을 사랑한다 너도 산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대학을 가야 한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모든 어른들도 모든 친구들도 대학을 가야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왜 오늘 이런 이야기만 길게 적냐구? 오늘로 방송을 시작한 지 나흘째가 되었다. 방송을 진행하기 전에 방송준비를 하면서 나는 보았다. 여러분, 밤의 디스크쇼 가족이 보내주는 수많은 엽서, 엽서들 그 엽서에는 학교이야기, 친구이야기, 잠깐 스쳤던 사랑이야기, 성적문제,심지어 성문제에 대한 고민, 고민들 왜, 우리들은 방송국으로 우리의 사연을 적어 보내는가. 왜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로 보내지 않고 방송국으로 보내는가 사천만의 객관식, 왜 방송국으로 엽서를 보내는가. 


1. 신해철에게 글씨 자랑하려고 


2. 신해철을 너무, 너무, 너무나 좋아해서 엽서로 애타는 심정을 하소연하려고 


3. 엽서를 많이 사두었는데 보낼 데가 없어서 


4. 매스컴시대니까 나도 매스컴 한번 타려고 


아니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사천만의 객관식이지만 이런 헛다리 짚는 소리를! 나는 보았다. 본 게 뭐냐구? 여러분의 갈증. 여러분의 갈증을 나는 보았다. 학교에서 집, 집에서 학교, 새벽별을 보고 아침자율학습, 점심, 저녁 야간자율학습, 주초고사, 월말고사, 기말고사, 연말고사, 날짜만 바뀌면,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시험, 시험. 영화, 연극, 책, 좋은 음악, 이런 걸 챙길 여유라곤 조금도 없는 생활 속에 방송국으로 보내는 엽서는, 여러분의 갈증이 모이고 또 모인 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문제를 걱정한다. 청소년문제를 사회문제화 시켜놓고 이야기한다. 근데 그들이 걱정하는 건 아주 극단적으로 일어난 청소년 문제이다. 마약복용이니 집단패싸움, 청소년들의 각종 범죄, 이 문제도 물론 심각하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방법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지 못하는 대다수의 착한 우리 친구들 그 친구들의 어느 곳에도 풀 수 없는 막막한 갈증이 이렇게 방송국으로, 방송국으로 몰려드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이 대목쯤, 나는 정말, 폼을 잡는다) 여러분, 이 해철이를 친구로, 연인으로 그리고 말벗으로 생각하시라. 같은 고민의 터널을 빠져나온 지 얼마 안되는 나같은 철딱서니를 믿고 이야기를 다 해달 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막막할 때, 그냥 울고 싶을 때, 그냥 짜증날 때, 그리고 그냥 신날 때 마음 푹 놓고 엽서를 적어보라. 자, 우리들의 머물고 싶은 순간을 위하여 작은 축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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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의 모든 글은 해철님이 직접 쓰신 것을 옮겨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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