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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일본 대중음악 개방에 대하여 


이 글은 단지 몇 년간 현장에서 직접 활동해 온 대중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경험과 느낌에 비추어, 내 방안에서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하듯 편안한 기분으로 풀어놓는 그런 '썰'일 뿐이다. 프로가 아닌 분들의 입장에서 황당해 할 정도의 전문적인 얘기는 하지 않을 작정이지만 쓰잘데기 없는 글은 되지 않도록 할 각오이니 많은 질타와 격려를 부탁드린다. 자, 얘기가 시작된다. 


글.신해철(그룹 N.EX.T의 리더겸 보컬)


내가 처음 들은 일본 대중가요는 '안전지대'의 노래였으며 아마도 84년 정도였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물론 그 훨씬 이전에 '블루 나이트 요꼬하마'라는 엔카가 전국적으로 알게 모르게 히트한 적이 있었고 '핑크 레이디'가 청소년층에 꽤 인기를 끈 적이 있었으나 뭐 그쯤은 예외로 쳐 두자)그후로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그 때 '쪽바리 노래를 듣다니'하고 일본 노래 듣는 친구들에게 눈을 흘기던 나는 (요즘에 비하면 일본노래를 듣는 것은 정말로 드문 일이었다) 직접 대중음악에 종사하는 입장이 되었으며 일본 대중음악은 개방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결론이 미리 나와버렸는데, 어쨌거나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일본 대중음악은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일본 노래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그 쪽 사람들을 돈벌게 해 주자는 얘기도 아니다.


지나간 역사, 결코 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국민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기 상조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논리전개라면 그 '시기'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50년, 혹은 100년이 지난다고 해서 과거의 일들이 잊혀지는가? 시간이 흐르면 그것은 과거의 일이다 하고 모두 잊을 수 있을까? 그것은 잊혀지는 것도 아니려니와 잊혀져서도 안 된다. 흔히 한국인은 감정이 풍부하고 용서를 잘 한다고 한다. 몇 천년 전의 수난사를 자손 대대로 전하는 유태인들의 독기에 비하면 우리네의 그 '국민감정'은 아직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가계를 불과 한 두 대 이상만 거슬러 올라가도 일인들에 의해 고문으로 폐인이 되고 자손들은 비참한 삶을 영위해야만 했던 '과거'가 있다. 따져보면 우리 한국인 중에 그런 '과거'의 가계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몇 천 년이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용서'라는 단어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예를 들어보자. 당신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이웃집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고 치자. 그 집 자손들과 자자손손이 원수로 지내야 하는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안 보고 살면 그뿐이다. 그 놈의 집구석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와 국가간의 얘기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제 시대는 그 '자손'들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놈의 집구석'의 자손들과 공유할 미래를 준비해야만 한다. 그러나 잊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미 밀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대중문화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쥬라기 공원'의 흥행수입은 우리 나라 웬만한 대재벌기업의 총 매출에 육박한다. 우리의 음반시장도 100만이니 200만이니 하는 판매고를 거론하는 규모에 와 있다. 일본이 우리 나라의 대중음악시장을 노리는 이유도 문화적인 측면 이외에 실제 경제적인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단한 반사이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 대중문화의 향유를 통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무장해제 하게 되고 이는 일본상품에 대한 좀 더 편안한 심리 상태에서의 구매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일본 대중음악을 막아온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엔카=트로트'라는 과거의 공식은 제외하고서라도 신세대의 저패니즈팝은 이미 음성적인 경로를 통해 충분히 영역을 확보했으며 이런 와중에 우리 대중음악은 자생력을 기르기보다는 히트곡 양산에 급급, 수많은 일본노래 표절 곡이 쏟아졌다. 일본이 여유 있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입장인 것에 비해 우리의 내부는 참담할 정도로 무너진 것이다. 이미 개방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인 것이다. 정면돌파 이외에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없다. 일본에 대한 문화적 동경을 느끼고 일본제 상품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을 탓할 염치가 과연 기성세대에게 있을까. 술이 거나해지면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군가가 튀어나오는 일부 몰지각한 할아버지 족들과 일제 '코끼리 밥통'쇼핑 붐을 이뤘던 아주머니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데 말이다. '일본'과 '일본상품'에 대해 이중적인 기준을 적용해 온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탓을 하려거든 친일파들이 미 군정에 빌붙어 살아남은 이승만 정권시대나 일본에 그렇게도 쉽사리 손을 내밀었던 박정희 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나 그렇지 않으려거든 이 악물고 정면대결을 할 일이다. 코끼리 밥통이 사라진 것은 국산 밥통의 품질이 좋아졌기 때문이지 정부의 애국심에 대한 호소가 먹힌 것이 아니다. 음악에도 마찬가지의 기준이 적용될 것이다.


지금 그들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


단적으로 일본은 1억의 인구와 막강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2위의 음반시장이며 재즈 등의 분야는 종주국을 추월, 세계1위이다. 한국인은 무서운 민족이다. 왜냐하면 바로 옆의 일본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조크가 있다. 일본의 위성 TV만으로 일본의 대중음악은 가볍고 얄팍하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서구 국가들처럼 일본 역시 TV가 대중음악의 킹 메이커 자리에서 내려앉은 것은 오래 전이다. 각 장르의 톱들은 세계수준을 넘나든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사멸된 프로그레시브 장르도 일본에서는 유일무이하게 유지되어 왔다. 즉 어딘지 모르게 얄팍해 보이는 일본풍의 가벼운 저패니즈 팝과 아이들 스타들의 현란한 의상 이면에는 무시할 수 없는 뛰어난 뮤지션과 대중 층이 존재함을 깨달아야 한다. 일주일 이내에 전국투어가 완료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최소한 6개월 이상 걸리는 콘서트 시장이 있고 나름대로 일본풍으로 정착된 콘서트 문화 속에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의 공연이 수시로 열린다. 일본의 뮤지션들은 자국시장에서 외국의 슈퍼 스타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며 자극 받아 성장해 왔다. 그 과정에서 대중들 역시 냉철한 안목을 키워왔음은 당연하다. 문화적인 기회를 갖지 못한 우리 대중의 역량이 여실히 나타난 저 뉴 키즈 공연 사태가 과연 대중의 책임뿐일까. 또한 그 이외의 요소들, 즉 국가 경제력이나 기술적인 분야들, 인적 자원 문제들도 비교하기 힘든 실정이다. 일본의 악기 메이커들은 세계시장 점유율을 휩쓸고 있고 일본의 아마추어 뮤지션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산품인 우수한 악기들을 싼값에 손에 넣을 수 있다. 대기업들은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들과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다. 장사 수완에서는 정평이 나 있는 그들이지만 뮤직 비즈니스 이외에도 엔지니어들의 기술도 뛰어나다.


이제 문화전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몽고족과 만주족은 중국대륙을 정복했으나 문화적으로는 거꾸로 정복당했다. 그리하여 화족의 문화는 오늘날도 건재하다. 세계사는 우리에게 문화의 중요성을 수백 번의 예를 통하여 입증하고 있다. 일제 역시 우리의 문화 말살에 총력을 기울였더랬다. 이제 세계는 국제전쟁의 뒤안길에서 문화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프랑스의 신경질적인 자국문화 보호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서, 또한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와 그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대한 얘기를 듣는 심정은 착잡하다. 우리 대중음악들은 서양 고전음악을 연주하는 정경화가 국가적인 자랑거리가 되는 동안 서양 대중음악을 연주한다는 이유로 퇴폐니 저질이니 하며 두들겨 맞아왔고 외국과 경쟁할 아티스트들을 스스로 몰락시켰다.


우리의 대중음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의 대중문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정부의 뒤늦은 관심과 지원이 요청된다.(솔직히 도움보다는 심의 제한이나 공연허가 등에서 훼방이나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게 이 계통 종사자들의 바람이지만) 스포츠가 국가의 지원아래 강력해 졌듯이 문화적인 지원이 국가의 생존을 위해 요청되는 시기가 왔다.


둘째, 대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물론 많은 대기업들이 이미 대중문화 산업에 뛰어들었고 오히려 이에 대한 우려의 소리마저 있지만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많은 것들이 돈과 직결된다. 국내 대중문화 산업이 영세성을 벗어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형자본의 유입은 필수적이다. 우리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외국의 대형자본에 의한 국내문화 지배로 나타날 것이다. 


셋째, 대중의 인식전환이다. 외국의 경우,공부 잘 하는 학생과 스포츠에 능한 학생, 예술적 자질이 있는 학생이 똑같이 '우수한'학생이지만 우리에게는 한 가지 기준밖에는 없다. 지금가지 얼마나 많은 우수한 예술적 재능을 가진 학생이 열등생의 낙인아래 신음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인생의 뒷길로 사라졌을 것인가. 내 경우에도 데뷔 초창기에 실력이상으로 간판 덕을 볼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낯뜨거운 일이다. 최근에는 아예 학력으로 음악 하는 인상을 주는 경우도 보이는데, 이는 본인 탓도 있지만 그것이 통하는 우스운 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엘비스도 마이클 잭슨도 대학은 안 다녔다. 각 분야에서 제 할 일을 하는 자가 이상적인 인간상이 되어야지, 무조건 남들보다 위에서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비참한 가치관에 휩쓸려서는 오히려 뛰어난 스타는 등장할 수 없다. 넷째, 가장 중요한, 대중음악인 스스로의 각성이다. 일개 국가의 연간 대중음악 히트 곡의 상당수가 표절이라면 이는 국가의 망신이다.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불리한 여건에 불평하지 말고 실력대 실력으로 외국과 경쟁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또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니 하는 말을 수긍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역시 그 말에도 획일적인 기준을 부여할 수는 없다. 우리의 무기는 가장 서양적인 것, 가장 동양적인 것, 가장 한국적인 것, 이렇게 세 개의 날을 가진 칼로써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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