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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Oct

음악에세이 음악 축구론을 말한다

작성자: anonymous 조회 수: 2272



다섯 번째 이야기-음악 축구론을 말한다


사회와 국가에도 구조와 계층이 있듯이 음악계도 그러하다. 가령, 사회에서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국가의 안정을 이루기 위한 열쇠가 되듯이 한 국가의 음악계의 구조에도 안정적이며 동시에 발전적인 형태를 이루기 위한 조걸들이 있다. 필자는 이것을 곧잘 축구경기에 비유하여 왔는데, 이번 호에서는 이 '음악 축구론'을 정리해 보았다(혹, 전문 축구인들이 보기에 이상한 비유가 될 지 모르겠으나, 음악을 말하기 위한 비유일 뿐이므로 이해하시라)


센터포드는 대부분의 경우 득점의 주역이며 경기의 스타이다. 그가 골을 넣을 때마다 관객은 열광한다. 흡사 모든 선수가, 아니 경기 자체가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 센터포드가 바로 대중음악의 소위 '스타'들에 해당한다. 누구에서 어시스트(작사,작곡,프로듀스 등)를 받듣 말든 득점(히트곡)만 올려도 된다. 이 센터포드가 갖춰야 할 자질이란 골 결정력인데, 이것은 스타성 즉 '끼'라든가, 가창력, 외모, 개성 등등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비애라는 것은 모두가 이 센터포드만을 염원하다는데도 있기만, 이러한 자질의 단하나도 갖지 못한 2류의 스타들이 실력 이외의 요소를 등에 업고 100일 천하를 다투어 온 데에도 있다. 스타는 스타다워야 한다. 센터포드가 굳이 수비를 잘 해야 할 필요도 없거니와, 골을 넣은 후에 관객에게 90도로 절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관객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훌륭한 인간성이 아니라 득점이다. 반대로 이런 면도 생각해보자.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마이클 잭슨보다 반드시 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음악은 성적표의 등수처럼 절대적 가치를 매길 수 없다. 매스컴의 '인조스타'에 염증을 느낀 우리 대중들이 싱어 송라이터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버린 지 오래지만. 사실 자신의 개성도 없이 그저 이럭저럭 곡이나 쓸 줄 안다는 2류의 싱어 송라이터라는 것은 노래를 잘 한다거나 잘 생겼다라는 것에 비해 하나도 잘날 것이 없다.


'인조스타'아닌 미들필더 격 음악인들 역할 중요


현대 축구로 올수록 미들필드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경기의 흐름을 읽고 운영하는 지휘관, 그것이 링커다.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싱어 송라이터, 셀프 프로듀서 등이다. 이 층이 두터울수록 대중음악계의 저력이 된다. 최근으로 올수록 때에 다라 자신이 직접 골문가지 러쉬해 득점을 올리고도 하는 공격형 링커나, 센터포트(스타) 중에 링커의 느력까지 겸비한 이들이 나타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구별법이 구조를 분석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다. 수비진에 히당하는 사람들이 연주자들이다. 외국과 우리의 차이점은, 외국의 경우 기타리스트를 위시한 많은 연주자들이 최소한 레프트 윙(Left Wing)정도의 위치인데 반해(케니 지는 심지어 센터포드다), 우리의 경우는 볼 것 없이 수비수라는 것이다. 연주자, 즉 수비수의 역할이 초라하다는 뜻이 아니다. 경직성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뛰어난 연주자의 부족도 문제지만 연주자가 이런 대접만 받는 대서야 누군들 어린 시절부터 연주자의 꿈을 키우려고 하겠는가. 사실 싱어는 천부적인 자질에 따라 하루 아침에 발견되기도 하지만 연주자는 아무리 천부적 자질이 있어도 오랜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야 한다. 또 그 트레이닝은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다. 연주자가 스타의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될 때, 더욱 많은 어린이들이 악기를 잡기 시작할 것이다. 디렉터나 프로듀서는 감독, 매니저는 구단주쯤 될까. 이제 실례를 들어보자. 사이먼 앤 가펑클은 뛰어난 링커와 센터포드의 결합이다. 조지 마이클은 처음엔 포드인 듯했으나 지금은 링커에 가까우면서도 뛰어난 감독이다. 에어로 스미스는 스티븐 타일러라는 걸출한 센터포드를 보유한 명문 구단이다. 비틀즈는 멤버 전원이 포드, 링커, 스위퍼, 스토퍼로서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의 토탈 사커를 구사했다. 심지어는 본인들이 감독에 구단주도 겸임하여 오늘날의 축구(??)발전에 기여했다. 엘비스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로서, 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구단인 비틀즈보다 음악적으로 뛰어나다고 볼 순 없으나, 어쨌


든 그가 없었던들 세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그는 '킹'이니까. 자 그럼 여기에서 결정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 축구경기와 음악의 차이점은 무엇일가. (생각해 보셔요) (한번 더 생각해 보셔요) 답: "축구 경기는 내용보다는 승패가 중요하다. 그러나 음악은 승패보다는 경기의 내용이 중요하며, 심지어 승패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물론 어떤 스포츠도 사실 승부보다는 경기 자체가 중요하며, 우리는 최선을 다한 패자의 눈물에 감동하고 그의 투혼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패하고 말았습니다."라는 아나운서의 멘트는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그러기에 승부의 세계는 냉엄하다고들 하지 않는가.


축구경기와 음악의 차이는 승패와 내용


그러나, 음악은 승부가 정해져 있는 경기도 아니고 등수를 매기는 시험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기준에 의해 정해진 등수를 보고 '요즘 저 노래가 인기가 있나보지'하고 생각하고, 미래가 창창해 보이는 젊은 연주자가 '가수'로 전향했다는 보도와 함께 자신의 원래 색깔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싱어로서는 3류에 불과한 노래를 착잡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사실 해보고 싶은 음악은 록인데 이번 앨범은 그냥 발라드라고 말하는 신인 가수의 인터뷰를 보며 '누가 너보고 말렸냐'라든가 '그럼 누구는 바보라서 록 하냐', 혹은 '그래 너 뜨고나서 록 하나 어디 보자', '록이 동네 북이냐'등등 분개한 후배들 옆에서 '욕 먹어도 싸다'라고 한 마디 거들고, 요즘 뜬다 하는 장르로 하루 아침에 전향한 햇병아리가 10년 이상 외길을 걸어온 선배(내가 감히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하는)앞에서 아저씨 담배 하나 빌려주세요 하는 꼴을 황당하게 지켜본다. (장르의 변화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니다. 가령 서태지가 메탈에서 댄스 그룹으로 전향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 개념 없이 그저 돈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하이에나 처럼 헤매는 족속들이 자신들이 전에 속했던 장르를 욕하는 건 무슨 이유인지. 하이에나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남이 사냥한 것의 찌꺼기를 먹을 뿐이다.) 예전에 무한궤도 시절, "해처리 오빠 노래 열심히 하세요. 나머지 오빠들도 반주 열심히 해 주세요"라는 편지 한 통은 정말 우리 밴드의 사기를 바닥까지 떨어지게 했드랬다(지금은 우리도 웃으면서 얘기하는 일이다. 혹 그때 그 본인이 이 글을 보시더라도 무안해 할 필요는 없다). 그러던 것이 요즘 대중은 앨범을 살 때 디렉터의 이름, 세션맨의 이름도 자세히 보는 모양이다. 또한 자신의 혼을 노래에 실을 수 있는 진짜 '카수'가 아닌 그저 기교만의 싱업다는 투박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티스트에 점수를 주는 안목도 생겼다(그러나 아까도 강조했지만 기교의 부족이 자랑이 될 순 없다. '무기교의 기교'라고 말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없다면). 김창환 같은 이는 가수보다 유명한 프로듀서이고, 세션맨 명단에 이정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판을 사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직 전체적으로는 동네 축구임을 부인하지 말자. 동네축구라는 말이 무엇인지 아실게다. 골목어귀나 인근 공터, 심지어는 경사진 산비탈길에서도 벌어지며, 축구공뿐만 아니라 배구공, 농구공, 짬뽕공이라 불리는 광경이란 이런 것이다. 골문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몰려 있다. 저마다 주먹만한 공도 사용한다. 여기서 볼 수 잇는 가장 흔한 "이리로!... 이리로!..." 혹은 "나 줘! 나!"하고 패스를 요구하지만 막상 공을 잡으면 여간 해서는 패스란 없다. 혹 공이 문전에서 흘러 나오면 그 뒤로는 완전 무인지경. 잽싸게 몰고 가서 상대편 골문에 넣을 때가지 아무도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없고 그 뒤로 "저 놈 잡아라...!"하면서 모두가 우르르 쫓아가는 촌극이 벌어진다. 해방 이후 50년, 우리 대중 음악계는 (필자는 가요계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많은 팽창을 거듭해 왔으나 그 구조를 분석해 보면 아직도 동네 축구의 일면이 많이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골문 앞에 몰려 잇는 것이다. 한편엔 진둑하게 제 갈길 가는 골수들과 한쪽엔 감각적인 것을 찾아 소화하는이들이 양립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파란 것은 더욱 파랗게 붉은 것은 더욱 붉에 해야 우리는 다양한 색을 즐기게 될 것이다.


글.신해철(가수 겸 그룹 N.EX.T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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