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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번째 이야기-한장의 앨범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번호에는 녹음에서 앨범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해설해보려 한다. 기술적인 정확한 설명보다는 쉬운 이해를 위한 것이며, 아마추어들도 어느 정도 녹음의 지식을 알아 놓으면 음악을 감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다음호에는 영국의 믹싱 엔지니어와 작업을 하면서 새롭게 배운 녹음 기술들에 대해 이곳 GMV 지면을 통해 몽땅 공개할 예정이니 관심있는 분은 꼭 기억하시길...


대중 음악의 활동을 구분하자면 한 세가지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 하나는 주로 방구석이나 작업실, 때로는 길거리에서도 이루어지는 '창작'이고, 다양한 형태의 기획을 거친 뒤 녹음실에서 이루어지는 '제작', 그리고 작품을 판촉하기 위한 '홍보'등이다. 사실 '홍보'를 제외하면 '창작'과 '제작' 의 과정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녹음 중에도 끝없이 아이디어를 내야 하고 '막판 뒤집기', '초치기' 등의 용어가 등장한다. '창작'은 고통과 인내를 마지막 순간까지 요구한다. 그래서 녹음실은 항상 콘서트장 만큼이나 익사이팅하고 아니아니 흥분되고(대단히 죄송하다 요즘 안 되는 영어를 쓸 일이 좀 있었드래서) 또 콘서트 장과는 좀 다른 재미가 있다. 홍보'에는 대략 세가지 경로가 있는데, 인쇄 매체를 이용한 인터뷰 등은 솔직히 지겹기 짝이 없다. 매일 받는 질문에 매일 하는 대답, 이젠 더 알릴 것도 없고 사람들도 알고 싶어 하는게 없을 거란 생각이 들면 그 다음엔 모델도 아닌데 사진을 찍어야 한다. 더구나 내가 한 적이 없는 말이 임의대로 실리거나, 왜곡되어 보도되면 혈압만 오른다. 둘째 경로인 방송은 때론 재미있지만 때론 혐오스럽다. 거대 기업인 방송사에게 아티스트 개인은 소모품의 운명일 수밖에 없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시건방이나 이단으로 비치기 쉽다. 셋째 경로인 콘서트는 가장 즐거운, 어지 보면 대중 음악의 본령이고 하이라이트이다. 그러나 한 번의 콘서트를 위한 준비 과정은 거의 '노가다'의 수준에 육박하고 2시간 이상의 콘서트는 (특히 록 밴드의 경우)사람을 완전히 탈진시키며 골병의 세계로 인도하는 거다. 이렇게 보면 '판 나오기 전까지'와 '판 나온 후'이렇게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호에는 녹음에서 앨범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해설해 보려 한다. 기술적인 정확한 설명보다는 쉬운 이해를 위한 것이며, 아마추어들도 어느 정도 녹음의 지식을 알아 놓으면 음악을 감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한다. 


기획


이 단계는 레코드사나 프로덕션의 스카우터들, 매니저들, 프로듀서들이 움직이는 단계다. 스카우터들의 부지런한 '발'과 '눈'에 따라 트럭 운전사에서 슈퍼 스타로 인생이 바뀐다는 그럴듯한 영화같은 스토리들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특히 아이들 스타의 경우는 무조건 예쁜 얼굴부터 찾아놓고 혹시 노래하겠냐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사실 스카우터들은 외국의 경우 소규모 인디펜던트에서 나온 숨은 진주-이미 발매된-가 막 빛을 발하려 할 때 잽싸게 사들여 자신들의 막강한 유통 경로를 통해 이익을 올리는 메이저 회사들을 위해 뛴다.우리의 경우에는 이 스카우터라는 부분은 최약점에 속하며 매니저나 프로듀서가 대충 겸업한다.물론 기획 단계 뿐만은 아니지만 제일 막강한 지위는 프로듀서다. 프로듀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작자의 지원을 받아 전권을 행사하며 제작하는 경우와 -심지어 제작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 기획팀의 의뢰를 받아 녹음 현장만 지휘하는 경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비틀즈와 핑크 플로이드의 엔지니어로 이름을 날린 알란 파슨스의 경우 자신이 제작자, 프로듀서, 엔지니어, 아티스트를 겸하는 경우이다. 우리의 경우, 프로듀서의 위상은 이제 그 개념이 인식되는 과정이며, 점차로 제작자에게 전권을 위임받는 프로듀서들이 등장하고 있다. 예전에 기획자와 매니저의 개념이 혼재하며 판 제작에 돈 댄 사람이 프로듀서로 명기되던 시절, 그러니까 임지왜란 때, 고참 매니저인 C모 아저씨가 내게 오더니 하시는 말씀,"해, 해츨아, (흥분해서) 죽이는 제목이 생각났데이...!" "뭔데요? (시큰둥하게)" "흠.. 비밀이라.." "그럼.. 곤 둬요! (홱 돌아서며)" "에.. 당연히 히트할 걸로 예상 되지만도.. (강렬한 경상도 사투리로) 느가! 우예! 날로 브리고 간다 말이가아! (네가 어떻게 나를 버리고 간단 말이냐)" "우아.. 훌륭하네요 (또 시작이시군)" 그런데 사실 그 C씨는 가수의 관리에는 상당히 밝은 분이었던 것이어서, 제작 기획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매니지먼트 만


을 담당했더라면 좋은 상과를 올릴 수도 있었으련만, 북치고 장구치는 습성을 못 버리고 지금도 고전중이시다. 자 어쨌건 아티스트가 선정되고 앨범의 방향을 프로듀서가 결정하면 작품자가 붙여진다. 아티스트 본인이 송라이터인 경우는 물론 예외이다. 예전엔 가수나 매니저가 무조건 얼굴만 디밀면서 '거 머 좀 괜찮은거 좀 써 바 봐'라는 경우가 대다수 였다는데 최근엔 프로듀서나 가수의 요구가 점차 뚜렷해지는 추세다. 물론 유명 일본 그룹 노래 테이프를 내밀며 '이걸로 가지'하는 자들을 얘기하는게 아니다. 프로듀서가 최종적으로 녹음을 시작하게 될 연주자를 선정하면 (프로듀서가 편곡자를 겸임하는게 일반적) 이제 녹음실로 가는 거다.


녹음이 시작되면


외국의 경우는 녹음실에서 해변이 내려다 보인다거나 사막 한 가운데 스튜디오가 있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의 경우엔 그런 곳은 물론 없고, 대부분 살풍경 하다. 여러 겹의 방음 장치에 의해 외부와의 소음이 차단되어 적막한 내부에는 기계류의 나즈막한 진동음과 불빛들, 전기 케이블과 에어컨의 냄새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분위기는 프로듀서에 따라 급변하는데, 요란한 웃음과 농담이 오가며 떠들썩하게 녹음하는 경우도 있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조용조용히 하는 경우도 있다. 먼저 멀티 레코더에 리듬 파트부터 한 트랙 한 트랙 담아가며 윤곽을 만든다. 그럼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설명을 추가하자. 


모노, 스테레오, 멀티...


예전에는 녹음이 입체감이 없는 모노로 행해졌다. 스테레오란 왼쪽과 오른 쪽 두 개의 스피커를 이용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거다. 뭐 이 정도야 다 아시겠지만 녹음 기술의 발전 과정이란 정말 20세기의 진보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어서 매번의 약진마다 사람들은 으아아 하고 감탄을 했드랬다. 약간의 이견은 있으나 최고의 레코딩은 에디슨이 이룩했다고 본다. 당시의 녹음은 지금과는 매우 달라서 원통형의 금속이 오늘날의 테이프 구실을 했고 둥그런 통안에 내지른 목소리가 도로 튀어 나온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했고 미신적인 공포감까지 느꼈다는 것이다. 하여간, 염화 비닐의 원반(디스크)를 이용한 상품용의 녹음이 행해지면서 녹음 시장과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스테레오란 양쪽에서 다른 소리가 들린다는 개념인데 (사실 기술적으론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 그러므로 양 쪽에 두 개의 마이크를 놓고 녹음을 한다. 그러면서 저 쪽 녹음실에선 동판이 돌아간다. 그 후 이 금속판을 원본으로하여 염화 비닐 판을 찍는 것이다. 당연히 연주자나 가창자의 실수는 치명적이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당시 우리나라의 스튜디오에선 가수가 연속적으로 실수를 하면 녹음기사는 '야 이 XX야 연습해 와'라는 말을 남긴 채 총총히 집으로 사라졌으며 연주자들도 한마디 씩 무안을 주고 사라진 텅 빈 스튜디오에는 매니저의 욕설과 가수의 구슬픈 울음 소리 만이 울리고 있었다는데. 하여간 거의 '원 샷'에 녹음을 해야 했으므로 가창력이 없는 가수는 있을 수가 없었다. 해서 '노래는 옛날 가수들이 잘하지'라는 말이 생겼다. 물론 연주자도 실수는 곧 밥줄과 연결되었으므로 자신의기술 중 가장 쉬운 연주 기술만을 조합해서 썼고, 음악의 발전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녹음 기술의 총아 멀티 트랙 녹음이 등장한다. 지미 헨드릭스나 비틀즈의 초기 녹음은 모노다. 모노는 물론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그래서 스테레오 시대 이후에도 모노 시대의 느낌을 흉내내어 따뜻한 느낌을 내기도 한


다. 초창기 스테레오는 왼쪽에선 드럼, 오른쪽에선 노래가 나와서 마치 노래를 듣노라면 몸이 한 쪽으로 기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다. 물론 당시에는 센세이셔널 했지... 이렇게 왼쪽과 오른 쪽 2채널로 녹음을 하던 것이 4채널이 되면서 멀티의 시대가 온다. 비틀즈의 초기 걸작은 이 4트랙을 기본으로 이루어 졌다. 밴드가 먼저 연주를 하고 나중에 노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또한 자신의 리드 보컬 위에 자신이 더빙을 해 화음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 졌다. 그 후 멀티 트랙은 8채널, 16채널로 늘어 났고- 옛날 '작은 거인' 판을 보면 프론트 커버에 큼지막하게 '16챤넬 녹음'이라고 써 있다. 촌스럽긴... 하긴 당시에는 대단한 일이었을 게다. - 그 뒤 24채널, 32채널로 계속 늘어났다. 필자가 데뷔하던 무렵엔 24채널로 녹음한다는 사실에 감격스럽던 것이 현재 국내 유명 녹음실의 주력은 48채널이고 영국은 64, 혹은 72채널이 주력이다. 즉, 각 악기소리를 따로따로 각 방에 투숙(?) 시킨 뒤 믹싱과정에서 화장을 시키고 나중에 로비에 집합시켜서 쇼를 여는 거다. 그러나 채널이 많은 것과 음악의 질은 비례하지 않는다. 무한궤도 시절의 얘긴데, 우린 심지어 멀티의 개념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키보드 녹음 중에 바이올린 소릴 쓰다가 연주자가 (정석원) 신호를 주면 옆에 대기하던 멤버(조형곤)가 번개같이 스위치를 눌러서 벨 소리로 바꿔 녹음을 한 뒤 의기 양양하게 엔지니어에게 자랑을 했던 것이다. 1트랙 절약하게 되었노라고... 그당시 엔지니어 아저씨의 그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이란.. (그렇게 1트랙 안에 동시에 여러 소리를 나중에 각각 화장을 할 수가 없다.) 자 이로써 간단한 설명이 된 것 같은데... 보컬 트랙을 녹음하게 되면 본격적인 천태만상이 빚어진다. 먼저 무드파는 조명을 어둡게 해줄 것을 요구한다. 거기까지가 기본이고 그 다음엔 촛불을 켠다거나, 야시야시한 붉은 조명을 켜는 에로틱파도 있고 불을 환하게 켜는 '밤이 무서버'파도있다. 웃통


을 벗어 제끼고 땀을 흘리도록 에어컨을 끌 것을 요구하는 야수파는 대개 로커이고, 싸구려 양주나 소주를 박스째로 가져와 전밴드가 일단 병나팔을 분 뒤 시작하는 음주 연주파, 노래가 끝날 때 까지 대형 재떨이를 2~3개 채워 버리는 굴뚝파, 한 명이 열심히 연주나 노래하는 도중 나머지 멤버는 한 쪽 구석에서 고도리 패 돌리고 있는 정전자파 등, 왜들 이 직업을 택했는지 알 것 같다는 주위의 한탄이 나온다.


글. 신해철(그룹 N.EX.T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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