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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쁜 몸'의 하루일과 


풋내기가수에 불과한 내가 日刊스포츠에 스타스토리를 쓴다는 것이 주제넘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내가 스타가 된 것인가하는 자문과 함께 조금은 보람도 느낀다. 


단지 음악이 좋고 노래가 좋아 그야말로 어쩌다보니 가수가 된 것뿐인데 요즘 나에게 쏟아지는 주위의 환호와 관심은 실제 내 위치에 비해 너무 지나친 대접이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내가 남들보다 노래를 특히 잘한다든지, 내 노래의 음악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흔한 말로 운대가 따르지 않았다면 이러한 관심은 불가능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처음 스타스토리를 쓰려고 할때 나는 상당히 망설였다. 스타라는 자신도 없는데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존심이 센 나로서는 아무리 내가 대중 앞에 서는 가수라지만 내 자신을 미주알 고주알 오픈하기가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지면이 가수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생각에 결국 마음을 바꾸게 됐다. 비록 2년도 채 안된 가수활동이었지만 반은 학생신분으로 나는 그동안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했다. 


무대 위에서의 환희와 순간 못지않게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괴롭고 힘든 시간도 많았다. 


앞으로 엮어갈 내 자신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좌절해 방황하기도 하고, 때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자신의 이상을 끈질기게 추구해가는 이 시대 모든 젊은이들의 삶의 한단면으로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귀중한 지면을 할애받은 만큼 가능한한 젊은이다운 패기를 갖고 가수로서, 한 인간으로서 내 이야기를 가식없이 그려가고 싶다. 


또한 알차면서도 재미있는 지면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솔로데뷔곡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의 히트는 내 생활의 리듬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다. 


지난 6월 첫 솔로독집이 발표된지 불과 2개월도 안돼서부터 나는 내 시간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소위 '바쁜 몸'이 됐다. 결코 바라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가수가 되겠다고 나선 이상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라는 것을 잘 안다. 


음악활동이 단순한 취미가 아닌 일로서 부담스럽게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요즘 같아서는 정말 화장실갈 시간조차 없다. 학교(서강대 철학과 4년)에 가서 수업들으랴 각종 공연무대에 출연하고 인터뷰하랴 또 지난달 중순부터 DJ맡은 MBC-FM <밤의 디스크쇼> 진행하랴 정말 촌음을 아껴서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루종일 이리뛰고 저리뛰다가 밤 12시에 끝내는 <밤의 디스크쇼>를 끝으로 잠실 집에 도착하는 시각이 대략 밤1시경. 


이때부터는 하루중에서 가장 자유스럽게 향유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펼쳐진다.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지만 머리는 더없이 맑은 시간대가 바로 이때다. 대학에 들어가 '무한궤도'로 그룹활동을 시작할 즈음부터 컴퓨터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이 밤시간에 컴퓨터를 이용해 평소 하고 싶었던 음악을 마음대로 구사해본다. 컴퓨터작업을 통해 고도로 어려운 연주에 심취해 보는가하면 떠오르는 멜로디를 기초로 곡도 만들고 편곡도 한다. 


이렇게 컴퓨터음악작업에 몰두하다보면 시간은 어느덧 새벽 두서너경. 이때부터 잠자리에 들어 수면시간은 보통 4시간을 넘지 못한다. 아침 9시쯤에는 학교갈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활동량에 비해 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다행히 자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나 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에 견딜만하다. 내 차에는 이동하면서 차속에서 자을 자기 위한 베개까지 갔다놨을 정도다.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가다보면 문득문득 알지못할 공허감이 밀려들 때가 있다. 이 길이 내가 원했던 길인가. 


노래를 함네하고 점점 속물적인 인기에 물들어 진정 원하지않았던 음악과 나도 모르게 타협해가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러한 음악적 갈등도 겪어봐야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당분간은 이 생활에 보다 능동적으로 부딪쳐볼 다짐을 하곤한다. 


이같은 생활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런 생활 가운데서도 내가 하기에 따라서는 음악적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나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지적에 반기를 들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 현재 내가 만들어서 부르고 있는 노래의 대부분이 어느 정도는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곡들이란 점을 내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건지 모르겠지만 요즘 <슬픈 표정 하지말아요>가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이 곡의 뛰어난 음악성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감미로운 슬로템포의 발라드리듬에 녹아들듯 어우러지는 감성적인 노래말이 이 곡을 들어줄만한 노래로 만들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길을 걸어왔네...로 시작되는 이 <슬픈 표정 하지말아요>가 알려지기 시작했던 지난 7월께부터 나는 주위의 젊은 음악팬들로부터 "가사가 아주 시적이다. 정말 본인이 지은 가사냐"는 질문을 적잖이 받았던게 사실이다. 심지어는 '노래보다는 시를 써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소리까지 들었던 적도 있다. 


이 노래의 가사 역시 내가 만들었던 다른 노랫말처럼 그동안 삶과 인생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내 나름대로의 감정을 진지하게 표현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가사에 인생의 그 무엇을 담고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은 비약이다. 단지 가사에 맞는 곡이 있었기에 노랫말이 살아난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런데 좀 건방진 말같지만 나는 대개 곡에 이같은 노랫말을 지어 붙이는데 10분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난 88년 여름 'MBC강변가요제'에서 그룹 아기천사의 곡으로 첫선을 보였던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는 강변가요제 직전에 같이 대학가에서 음악활동을 했던 원경(현 한양대 국교과 4년)이 곡을써와 "이곡에 가사를 붙여 한번 강변가요제에 나가보자"고 해서 그 자리에서 노랫말을 붙였었다. 


이 당시 내가 속해있던 그룹 '무한궤도'의 멤버들은 학구파답게(?) 여름방학을 맞아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외연수중이 었기 때문에 나는 '아기천사'들과 함께 급조한 이곡을 들고 대회에 참가해 24개팀이 겨루는 본선까지 진출했었다. 


아무튼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만 이처럼 번갯불에 콩볶아먹듯 그야말로 '초치기'로 노랫말을 붙이기 일쑤다. 


그동안 음악활동을 하면서 1백여곡의 노래를 만들었는데 대개는 미리 그려놓은 악보의 멜로디를 몇번 흥얼거려보다가 곡과 어울린다싶은 가사를 속사포식으로 써대 완성한 곡들이다. 


이를테면 요즘도 녹음실에서 곡을 취입하기에 앞서 5분 전쯤에 후다닥 가사를 짓는 식이다. 


스스로 문학적 소양이 별반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처럼 순식간에 떠오르는대로 지은 노랫말이 그나마 듣기에 거북하지 않은 작품(?)이 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기이할 정도다. 


그것은 아마도 내자신의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음악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강한 욕구에 따라 어느 정도는 그에 걸맞는 능력이 발휘되기 때문인 것 같다. 


바로 이런 '임기응변식'작사가보다 성숙한 음악을 창출하는데 하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꼭 심사숙고한 작품만이 아니라 오히려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손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어차피 접어든 프로가수의 기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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