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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이야기를 늘어놓기 전에 결론부터 내보자. 목마른 사람이 갈증이 너무나 괴롭다는 이유로 바닷물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말해 공중파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부활 아이디어는 목이 마르니 바닷물이라도 마시겠다는 아이디어보다 훨씬 더 나쁜 생각이다. 바닷물을 마신 놈은 죽어도 저 혼자 죽겠지만, 가요 순위 프로그램 부활은 수많은 부작용과 악덕의 망령들을 모조리 불러내는 대참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긴 설명을 듣길 원하지 않는 분들을 위해 나의 생각을 더 짧게 줄이자면, 나는 누가 차기 정권의 대통령이 되던 이러한 가요 순위 프로그램 부활의 악질적 발상을 늘어놓는 자들을 색출하여 여의도 광장에서 총살시켜 주길 바란다. 또,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부활될 경우 내가 할 행동은 녹화장에 난입하여 똥물을 끼얹는 행위가 될 진데, 한국 대중음악의 생존과 재생을 원하는 많은 분들은 나와 함께 혹시 닥치게 될 끔찍한 그 날을 대비하여 함께 가급적 많은 양의 똥을 모아두자고 부탁드리고 싶다.(설사도 괜찮다)

과거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어떠한 악행을 되풀이한 끝에 강제로 폐지 당했는가.

많은 시민 단체들과 뜻있는 사람들의 여론에 밀려 하는 수 없이 폐지될 때 까지 공중파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보여준 행동들은 혹세무민,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TV에 많이 출연하는 것이 인기가수라고 믿고 순위 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한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일부 가수들을 임의로 출연시킴으로 해서 독점적 방송 권력을 형성하고, 이를 빌미로 음악인들을 노예화하여 여타 오락 프로그램 등에 무일푼에 가까운 출연료로 멋대로 부려먹었으며,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입맛에 맞지 않는 음악인들은 철저히 배제하여 대중들과의 통로를 차단시켰다.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정부패와 야합은 장기적으로 가요계의 체질을 약화시키는 악성종양이 되어 장기간 존속하게 되었다.

그 곳에는 들국화도 김현식도 없었다.

들국화의 경우는 이러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악행(폐단이라는 말로써는 표현되지 않는다)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예다. 들국화가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을 비롯하여 앨범의 전 곡을 히트시켰을 때, 그들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가요계의 최정상이었으며 그들이야말로 가수왕이었다. 그러나 순위 프로그램들은 그들이 방송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혹은 적합하게 행동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그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아예 순위권에 올리지도 않았다. 대중들이 보기에 납득할 수 없는, 편파를 넘어서 불의에 가까운 이러한 모습들이 누적되어 이미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폐지 이전에도 그 의미와 권위를 크게 상실한 터였다. 시대의 흐름, 음악의 변화, 그 어떤 것도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 곳에는 연말 시상식을 위해 포인트를 누적해두려는 방송국의 애완동물들만이 줄을 섰을 뿐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우리 가요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강력한 장벽이자 암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순위 프로그램 살리면 가요계가 살아나나.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이러한 생각을 해냈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도 있으나 얘기는 냉정히 하자.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의 몰락은 필연적인 것이며 순위 프로그램을 살린다고 해서 치유되는 문제가 아니다.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은 왜 망했을까.
가수 얼굴도 노래도 구별이 되지 않는 복제품들의 반복출연, 역량도 재능도 없이 현장음에 밀려 고래고래 괴성을 질러대는 MC, 스포츠 응원 온 것처럼 전투적인 눈매를 하고 오빠들을 밀어주기 위해 객석을 채우고 있는 기형적 팬클럽 문화, 이러한 것들을 끝없이 바라보기엔 대중들은 이제 피곤하다.
프로그램을 필연적으로 인스턴트 싸구려 컨텐츠로 전락시킬 수밖에 없는 생방송이라는 한 종류의 마약에 의존해 시청률의 숫자에 목숨을 걸고, 게다가 순위 결정전이라는 개싸움을 붙여 대중의 천박한 감성을 자극하던 순위 프로그램을 무슨 새로운 명분을 붙여 부활시킨다고 해도 “좋았던 그 시절”은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제발 미련 좀 버려라.

새 시대에는 새 컨텐츠가 필요하다.

EBS의 공감이나 MBC의 쇼바이벌 같은 경우를 보자. 한쪽은 지극히 전통적인 그러나 한국 방송계가 인색하게 굴어온 뮤지션들의 라이브를 꾸밈없이 방송하는 프로그램이고, 다른 한쪽은 신인가수들을 동원해 새로운 경쟁포맷을 만들어 낸 음악 버라이어티 쇼다. 두 프로그램 다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영국의 음악 프로그램 가운데에서는 세 개의 소형 무대를 만들어 놓고 관객들이 파티를 하듯 음악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오히려 관객들인데 이십대 위주인 청년 관객들은 여유 있고 세련되게 열광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시범적으로 보여준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오빠가 아닌 경우에 고의적으로 박수조차 치지 않는 우리나라의 십대 팬클럽의 공격적인 성향으로는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기가 곤란하다. 그렇다고 점잖게 앉아 고개나 끄덕이는 러브레터의 관객들이 우리나라의 리스너들을 대표할 수도 없다. 양질의 관객,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분명한 것은 그들은 TV를 보지 않는다.
일본의 음악 방송은 관객이 없는 경우가 많다. 현장 스튜디오에 나와 있는 수백 명이 아니라 전파를 시청하는 수백만 명에게 박수의 임무를 맡기고 음악인과 관계자들은 양질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전력하는 것이다. 비명과 아우성소리가 음악소리보다 더 큰 우리나라 음악 프로그램을 왜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비명 프로그램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물론 비명 프로그램도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중들은 조용필 이래로 30년 가까이 비명만을 들어왔다.(그땐 최소한 음악이라도 좋았다)

특히 KBS는 쪽팔린 줄 알아야 한다. 정말 쪽팔린 줄 알아야 한다.

자고로 각국의 공영방송국들은 그 위치에 걸맞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그들은 시청률에 연연하기보다 뚝심을 가지고 문화를 육성하며 그 육성한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임무를 맡아왔다.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해온 영국음악의 큰 축 중의 하나는 BBC가 만들어 낸 수준 높은 실황 녹음과 음악 다큐멘터리가 세대를 아우르며 자리해 왔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또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KBS가 해야 될 일은 요즘의 세대가 전 세대의 음악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또한 음악 알맹이를 둘러싸고 있는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를 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최신 음악에 있어서는 여타 상업 방송국들의 지극히 자본주의 적인 속성에서 벗어나는 양질의 음악 프로그램들을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만드는 일이다. 공영방송국이 이따위 개싸움 같은 시청률 전쟁에 휘말려 있는 현실의 시스템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듀서 개인들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나는 이런 질문을 하나 해보고 싶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대중음악에 대해 궁금해 할 때 KBS가 지난 수십 년간 만들어 온 프로그램 중에서 내 놓을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때그때 현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 말고 한국 대중음악의 히스토리에 부응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이 있었는가. 만일 그런 것이 없다면 당신들의 방송국 이름 앞에는 왜 우리나라를 뜻하는 K자가 붙어 있는가. 순위 프로그램 부활? 웃기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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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순위 프로그램 부활 논란과 관련하여 혹여 순위 프로그램의 부활시, 녹화장에 똥을 투척하러 가실 자원 똥질 단원을 모집합니다. 10세에서 60세 사이의 음악을 사랑하며 장이 건강한 분들을 모십니다. 설사가 잦은 분들은 필히 요구르트를 10일 이상 복용 후 응모해 주세요. 거주지 별로 선별하여 KBS담당, SBS담당, MBC담당을 정한 후 통지해 드립니다. 선발되신 날 이후로는 콩나물을 드셔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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