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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라카미 류는 도대체?』. 1998. 친구미디어. pp 43-56.



  대권 도전(물론 정치가 아니고 음악이다.)을 위해 모두가 선망하는 ‘음악도시’의 시장 자리를 과감히 버린 신해철 전 시장. 그에게 무라카미 류에 관한 원고를 청탁했을 때 그는 상당히 망설이는 눈치였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도(道)라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솔직히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나와 그 사이에 바쁘다는 이유는 핑계가 될 수 없었다. 그러면 인터뷰를 정리해서 실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다음 글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영화소설집>으로부터 해철 씨가 받은 느낌을 요약, 정리해 놓은 것이다. 해철 씨 특유의 직설화법의 매력을 독자들이 최대한 느끼도록 구어체 그대로 옮겼다.



  왜 우리 젊음은 왕가위나 류나 하루키에 열광하는 걸까. 솔직히 나는 왕가위도 싫고, 신 기자님이 <영화소설집>을 읽으라고 권유하기 전까지는 류도 싫었다. 분명 왕가위나 류, 하루키는 동양인이면서도 동양적이지 않은, 아메리카나이즈화한 동양 문화의 전형이었다. 나는 그런 무국적성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기 위한 일종의 과도기 현상으로 보고 싶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이들의 문화 자체가 아니라 이들이 지닌 세련도였다. 팝과 가요의 차이처럼 말이다.

  류나 하루키 같은 일본 작가의 작품에 정서적으로 몰입하기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는 일본과 우리는 차이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 쪽과 우리 쪽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 가치관에서 너무나 달랐다. 따라서 하루키나 류의 문학 세계는 신기한 대상은 될지언정 정서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닌 것 같았다. 생각해 보라. 류는 청춘을 휘날리게 보내지만 일본 청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었다. 만약 이문열 씨가 젊었을 때 마약을 오방 때렸다고 하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배설구가 있는 문화, 돈 안 들이고 노는 문화가 있다는 점에서 일본이 부럽다. 소설에도 나오듯이 마리화나가 없으면 수국을 말아서 필 수도 있는 곳이 일본이다.

  지난 4월 초 신촌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신 기자님이 “류를 좋아하냐?”고 물어보았을 때 나는 분명히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류의 책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 어떤 책인가를 대강 읽다가 중간에 집어 던진 적은 있었다, 알고 그러는 거야, 척하는 거야, 자기가 놀아 봤다는 거야 뭐야. 놀긴 좀 논 새끼 같은데 이게 뭐냐. 내 느낌은 이랬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개뿔도 없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책을 덮고 나서 받은 첫 느낌은 ‘아이구 선생님, 존나게 노셨군요’ 였다. 만약 우리나라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면 검찰에서는 아마 “야, 이 새끼 했다는데 지금이라도 못 잡아넣나?”라며 공소 시효를 계산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파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실제 경험에 거의 의거해서 썼다”는 말로 가늠컨대 류는 참으로 대차게 살았다는 느낌이다. 우선 퇴폐적인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류가 그린 퇴폐를 나는 미학적 관점에서 보려 했고, 그 결과 허무보다는 파워를 느꼈다. 이는 건강한 퇴폐였기 때문이다. 섬세함과 우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문체도 마음에 들었다. 내내 시를 읽는 기분이었다. 이 책에 실린 영화들은 거의가 모르는 영화였다. 류의 영화 취향은 나에 비해 상당히 고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마다 상당히 자의적인 해석을 가하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이 마약을 주로 다루었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잠시 내 얘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일반인의 생각과는 달리 섹스, 마약 두 가지 모두에 탐닉하지 못했다. 마약 복용으로 전과 2범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으로만 자유로우려 노력했을 뿐이고 진하게 겪은 바는 없다. 기껏 마약이라고 해 봐야 대마초 정도였고 이를 즐긴다거나 몰입해서 탐닉하기보다는 학구적인 호기심에서 일일이 분석해 가며 했다. 물론 전혀 안 해 본 사람보다야 많이 알겠지만 경험 횟수 역시 그다지 많지 않다. 섹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여자를 알 때는 이미 스타가 되어 버린 후였고 남들에 의해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경험의 폭이 유달리 좁았던 것이다.

  내가 마약을 했던 것은 서양 록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서양 록 음악의 일부 장르는 약물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늑대는 천사의 향기’에서는 LSD를 맞고 핑크 플로이드의 ‘움마굼마’ 앨범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그 묘사는 정말 숨 막힐 정도로 리얼했다. 이 장면을 우리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궁금했다. 아마 그 행위 자체를 무조건 추잡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았을 것이다. 과연 마음을 열고 그 작가의 상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들었을까. “왜 이러는 거냐, 골 때린다” 등등의 단순한 호기심이나 일탈에 대한 동경에서 이 부분을 읽었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없으리라.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은 드러기한(마약에 취한) 상태에서만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내가 마약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된 이유도 되겠지만, 약물 문화가 록 음악을 지배하던 시기는 분명 끝났다. 핑크 플로이드의 현재 음악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드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든다.

  류는 마약을 정말 대차게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대차게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약물을 접할 환경도 아니다. 부러운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다만 사물에 대한 직관이나 관조는 후천적인 학습이 아니다. 왜 똑같은 경험을 가진 다른 자들이 양아치로 끝날 때 무라카미 류는 그 정도의 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교부 철학자는 이미 10대에 애아버지가 됐지만 훗날 숭고한 정신 세계에 도달한 것을 보면 경험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는 똥이 되고 누구에게는 약이 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 모양이다.

  마약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서구의 마약 정책은 사용자를 피해자로 보지만 우리는 마약 복용자를 사회에 대한 가해자로 본다. 서구는 판매 신디케이트는 중죄로 다스리지만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라고 본다.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용자들을 죄인으로 본다. 이들을 처벌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본인들 역시 ‘때려 줘야 정신을 차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결코 국가에서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류는 왜 그렇게 마약과 섹스에 탐닉했을까. 아주 소박한 단어로 표현하면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섹스는 속성상 반드시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 쪽으로 몰입하게 돼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섹스의 정신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데 류는 섹스의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지 않아서 좋았다. 마약이나 섹스는 육체에 영향을 주어 정신이 변하도록 한다. 하지만 류는 육체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다. 한 번도 위태위태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중의 자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에 보이는 류의 겉껍질은 완전히 부서져 작살이 나 있고 속껍질 속의 가짜 류는 계속 헤매고, 하지만 속껍질 속에 또 껍질이 있어 그 곳에 류가 들어앉아 떡하니 구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감성의 퇴화를 막기 위해 류는 마약에 의존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분명 마약은 일종의 가상 체험으로써 감각을 예민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진 않다. 맨 정신에 하는 게 진짜일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렇다. 술도 약물도 위선도 개념도 모두 제거한 상태에서 자연인으로 이 세상과 부딪치고 싶다. 류와는 달리 나는 외로움으로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류의 소설을 읽고 느낀 소감을 한 마디로 줄이면 ‘될 놈은 된다’였다. ‘될 놈은 요 나이 때부터 그런 해석을 내리는 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류의 반만큼도 헤매 다니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헤매 다닐 용기도 없었다. 사람들은 나를 서태지에게 많이 비유한다. 그러나 나와 서태지는 분명 다르다. 서태지가 낙오자 정서(nothing to loose)를 대변했다면 나는 비겁자 정서를 표상했을 뿐이다. 그 비겁자 정서는 어중간하게 치인 내 인생 때문일 것이다. 모범생으로 살았지만 언제나 소속 집단과 준거 집단이 달랐고, 초등학교 때는 몸이 약해서 어쩔 수 없이 책을 볼 수밖에 없던 아이. 그래서 본의 아니게 독서왕 타이틀을 참으로 많이도 땄던 나였다. 모범생이라는 의무감 때문이라도 공부를 때려치울 수 없었던 것이다.

  대입 학력고사가 끝나고 동경하던 방황을 조금이나마 흉내 낼 수 있었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그 자유라는 것을 조금씩 맛보면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망설임도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낙오자도 부러웠고 모든 걸 갖고 있는 승리자도 부러웠다. “남들이 요구하는 대로 졸업장만이라도 따면 보수 기득권층의 말단에 편입돼 안전빵으로 살 수 있는 마지막 찬스가 될 텐데. 과연 이 모든 것을 내가 한 방에 포기할 수 있을까. 음악을 위해서 굶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음악에 대해서 신념을 갖고 있는가....” 무서웠다. 결국 음악을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팬들도 내 음악에서 그런 고민, 두려움의 흔적 같은 것을 느낄 것이다. 반면 류는 방관자였던 것 같다. 그것도 상당히 탐미적인 구석이 있다.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맛본 방관자. 하지만 쓴 맛, 떫은 맛도 음미하려는 자세를 갖고 있는 특이한 케이스 같았다. 방관자가 예술가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냉소적이면서도 냉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은둔자가 되어 버린다. 예술가가 된 것을 보니 그는 기본적으로 인생에 대해 휴머니티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여자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히 냉정한 듯하다. 편지 한 통 안 하고 찍 끝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됐던 도쿄의 변두리 지역처럼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공간이 있다. 강북이다. 미아 4동이 내 고향이다. 태어나서 고3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지금도 강남 정서가 왠지 싫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풍요롭지는 않았던 것 같다. 비가 내리면 개천이 쓸려 내려가는 그런 풍경을 보고 자랐다. 그리고 그 개천에 지하철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강북을 떠났다. 도봉산 줄기에 있는 속칭 돌산을 나는 방과 후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나는 도시 아이도 아니고 시골 아이도 아니었다. ‘중간자 정서’는 이때부터 생겨났다. 개울물에 나뭇잎이 떠다니는 것을 홀로 관찰했던 나는 콘크리트나 시멘트 이미지보다는 흙과 비와 나뭇잎의 이미지가 더 기억에 남는다. 잘살 때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초등학교 후반의 어려웠던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사각형 통(프로판 가스)이 있으면 더운 물이 나오는 집이었다. 그 사각형 통으로 계급이 결정됐다. 지금도 힘들 때나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할 때, 아무도 몰래 그곳으로 간다.

  내가 20년 전에 놀았던 놀이터 그네에 나는 앉아 있다. 아파트 주위에 있는 나무 등걸의 무늬 하나, 시멘트 담의 무너져 가는 갈라진 자국 하나, 그런 것까지 선명하게 기억에 떠오른다. 주위는 물론 다 변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실핏줄 같은 골목길에서부터 왼쪽으로 몇 발자국, 오른쪽으로 해서 이쪽으로 가면 누구네 집, 이쪽으로 건너가면 뭐가 있고까지...... 하지만 이제는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동네가 되어버렸다.

  우리 집 뒷산에는 주택을 지으려고 터를 닦아 놓은 곳이 있었는데 나는 친구들과 거기서 야구를 하며 놀았다. 바로 거기에 드림랜드가 들어섰다. 1997년 4월 드림랜드에서 서울 앙코르 공연을 할 때였다. 약간 비탈진 경사가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헌데 공연을 마치고 나오니까 바로 우리 집 앞으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바로 어린 시절 친구들하고 야구를 하던 그곳에서 공연을 한 것이었다. 그냥 기가 막혔다.

  이 소설은 캐릭터가 사실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왈가왈부하는 인간이 나오지 않아서 특히 좋았다. 모두가 드라이한 것 같지만 상처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나는 상처가 있는 사람이 좋다. 아니 상처 없는 사람이 싫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거나 아니면 무섭게 자기를 방어해서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한 인간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정말 EQ, IQ가 다 떨어져서 상처를 받을 만한 수준이 못되는 인간일 것이다. 류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어떻게든 상처를 받는다.

  내가 받은 것을 상처라고 표현한다면 아마 배부른 자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나를 아직까지도 부잣집 아들로 본다. 고생을 하거나 손에 흙을 묻히지 않았다고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잔 상처는 많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집안이 어려웠던 나는 동대문 이스턴 호텔 뒤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보따리 장사를 했다. 비누도 팔고 보리차도 팔다가 부모님에게 들켜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두 달 동안의 군대 생활도 상처라면 상처였다. 나는 그곳에서 집단이 얼마나 난폭해질 수 있으며 방향을 잃어버린 집단이 얼마나 맹목적인가를 배웠다. 10개월의 수형 기간 역시 상처였다. 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면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반면 한 달을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10개월이라는 적당한 기간 동안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고립돼 간다는 느낌’, ‘최소한의 행복의 조건들이 타의에 의해서 박탈되는 그런 절망감’을 맛보았다.

  류와 내가 갈라지는 지점은 상처를 수용하는 방식이다. 류는 자신의 상처를 그냥 부여안았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고 누가 나를 위해서 뭔가 해 주기를 바라는 기대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세상에 대한 의무감 같은 것이 남아 있다. 세상은 아직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나는 나 자신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세상이 좀 더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음악을 한다. 류처럼 고고한 자세는 아직은 아니다.

  류와 나의 가장 큰 공통점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것이다. 나는 류가 말한 “권력을 가진 자에게 복수하는 것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초라한 기성세대가 정말 싫다. 기성세대로 그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나는 사춘기 3년을 살다 죽겠다.

  무라카미 류. 이 책을 읽고 그가 너무나 마음에 들게 된 이유는 그 인생을 대하는 태도였다. 인생에서 행복의 포인트는 아주 사소한 데서 결정된다는 믿음이었다. 내가 감방에 있을 때 어머니가 면회를 오신 적이 있다. 창살을 사이에 두고 만져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 그때는 전화 한 통, 포옹 한 번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너무나 소중한 포옹이었다. 내게 정말 소중한 것은 수십만 장의 앨범이 팔리고 수만 관중 앞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갖는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사소한 기억들이다.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한국에서 마약이 합법화되어도 다시는 마약을 하지 않겠다”고 울면서 약속했다. 역시 나는 류처럼 살 수는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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