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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재 이야기-'창작의 고통 외면하고 달콤한 결과물에 집착하는 자들을 결코 예술가라 부를 수 없다'


대중문화 기반 위협하는 거대한 종양 '표절'


드디어 많은분들의 요청에 의해 '표절'을 도마 위에 올렸다. 필자 역시 한 사람의 창작인으로서 이런 주제를 논하는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미 매스컴에 여러 번 오르내린 이표절의 문제는 일개 국가의 대중 문화 기반을 위협하는 거대한 종양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인 것도 외면할 수만은 없는 사실이다.


표절이란 무엇인가


자. 그럼 표절이란 무엇인가. 필자 소유의 1975년도판 국어 사전에 따르면 "남의 시나 문장을 훔치어 제것처럼 발표함'이다. 왜 무려 20년이나 지난 사전을 인용하느냐 하면, 현 공윤(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표절 판정 규정이 필자가 국민학생이던 '78년도에, 강산이 거의 두 번 변하기 전에, 다시 말하자면 대통령이 4명 바뀌기 전에, 디스코가 유행하던 시절에 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창작곡의 표절 결정기준 (1979. 3. 8. 제18차 가요.음반전문심의회 결정)


1. 주요 동기가 동일 내지 흡사한 경우 표절로 인정함.


2. 가. 주요 동기라 함은


4/4 4/2 6/8 5/4 박자는 첫 2소절 2/4 2/2 3/8 3/4 박자는 첫 4소절


나. 흡사하다함은, 박자 분할이 동일하고 한 두 음의 음정만 다른 경우를 말함.


2. 주요 동기 이외는 1항의 소절 수의 배수를 표절로 인정함.


4/4 4/2 6/8 5/4 박자는 첫 4소절


2/4 2/2 3/8 3/4 박자는 첫 8소절


3.음형은 동일 내지 흡사하고 박자의 분할 배분만 변경된 것은 표절로 간주함.


소절이니 박자니 하는 것을 설명 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위의 규정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빠져 나갈 수 있는 것인데다가, 발표되는 곡들은 모두 다 위의 규정대로라도 심의를 한다는 것이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표절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원작자의 고소가 있어야만법적인 처벌이 가능하다. 표절 판정이 내려질 대는 이미 속된 말고 '우려 먹을 건 다 우려 먹은' 상황이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방송 금지 조치가 내려져도 별 타격될 것이 없다. 표절 판정이 내려지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 내야 하는 외국과는 경우가 다르다. 게다가 음악은 수학이 아니기 때문에 표절 작품을 가려내기란 굉장히 애매한 일이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든 표절에 관한 송사는 굉장히 오래 걸리고 까다롭다(단, 노래.멜로디 처음부터 끝까지, 반주의 음색 하나까지 완전히 일치하는 표절 곡이 수두룩한 우리 나라는 제외). 그러므로 필자가 공윤의 심의에 관한 분편한 심사를 노출하긴 했지만, 사실 표절은 수학적 판정이나 법의 규제로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표절의 판정법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최근 들어 많은 감상자들이 표절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일부 몰지각한(매우 몰지각한) 청중들은 '노래만 좋으면 됐지 표절이면 어때'라고 말하는 위험한 사고방식을 보이고 있다. 물건만 좋으면 도둑질한 '장물'이라고 구입해서 쓰겠다는 것인지? 예술인의 스캔들을 음악 자체와는 무관한 것으로 관대하게 치부해 버리는 선진 대중층도 표절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그것은 음악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표절을 극도로 혐오하는 감상자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닥치는 대로 싸잡아 비난한다. 오해하기 쉬운 경우들은 다음과 같다.


표절 판정법


1. 번안곡의 경우


당연히 많이 듣던 팝송과 완전히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절차를 밟을 경우, 표절이 아니라 번안이다. 현재 일본 노래의 표절이 범람하는 이유에는 합법적으로 일본 곡을 번안해서사용 할 길을 막아 놓은데에도 원인이 있다.


2. 인용구 삽입의 경우


몇 년 전, 변진섭의 '희망사항'이 한창 인기를 끌 무렵, 작곡자 노영심양의 집에 전화한 웬 남자 왈, "이 XXXX야. 너 클래식 표절했지! 난 다 알아!" 영심..."...(황당해서 기절상태...)." '희망사항 뒷부분에는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의 피아노 연주가 삽입되어 있다. 아마도 베토벤의 '운명'이 삽입되어 있다면 이런 오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인용구의 원작자를 밝혀 놓거나, 밝힐 필요도 없이 누구나 알고 있는 멜로디를 인용하는 경우 표절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가령 에릭 카르멘의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는 라흐마니노프 곡의 변형인데, 이 경우도 표절이랄 수는 없다. 다만, 노래의 주 멜로디에 스리슬쩍 집어넣어 '인용'이 아닌 자신의 악상으로 처리하려는 의도가 보일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3. 우연히 일치할 수 있는 확률이 인정되는 경우


서양의 12음계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좋은 멜로디나 화음의 경우의 수는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지 오래다. 아무리 좋은 멜로디를 구상해 봐도 이미 몇 년, 혹은 몇 십년 전에 누군가가 그 멜로디를 사용해 곡을 발표한 경우가 비일 비재하다. 혼자 지리산에 들어가 50년 연구 끝에 멀리에서도 모습을 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해 나와보니 세상에는 이미 '텔레비젼'이 쫙 깔렸더라는 야그다. 언 듯 생각하기엔 '도'에서 '시'까지의 12음계 가운데 (도에서 시까지 일곱 개인데, 왜 12음이지 하지 말고 가운데 반음들도 세어보셔요.) 나올 수 있는 멜로디의 조합은 무한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대중이 친숙하게 느끼거나 '아름답다' 혹은 '흥겹다'의 감정을 유발하는 구조는 수학적으로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천편일률화되어 있다. 그렇지가 않다. 대중이 친숙하게 느끼거나 '아름답다' 혹은 '흥겹다'의 감정을 유발하는 구조는 수학적으로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천편일률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송대관이 '쨍하고 해뜰날'과 제이 게일스 밴드의 '센터포드'의 주요 동기가 일치하는 등의 사건이 생긴다(여담이지만 한 대는 정말 제이 게일스 밴드가 송대관을 표절한게 아니냐라는 설이 심각했드랬다. 믿거나 말거나). 화성의 진행은 더더욱 그러하다. 'Am-G-F-E7'이라든가 하는 대중적으로 친숙한 코드의 진행은 일명 '머니 프로그레션'이라 불리운다. 이 코드를 사용해 곡을 만들면 무조건 히트가 나므로 돈을 벌게 된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머니 프로그레션에 속하는 코드의 진행이 얼마나 될 것으로 생각하시는지? 대략 100겨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가지 발표된 천문학적 숫자의 노래 가운데 '히트'의 딱지가 붙은 곡들은 90%이상이 이 머니 프로그레션이거나 그와 매우 유사한 변형들이다. 그렇다고 코드가 일치하는 표절이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멜로디의 포화상태에다가 흑인은 이런 식을, 동양인은 저런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인종적-지역적-문화적 특성까지 감안한다면 운신의 폭은 더 더욱 좁


아진다. 음악은 비틀즈에서 끝났고 이젠 우린 무얼 하느냐라는 푸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표절의 기준은 점점 무디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우연히 일치할 수도 있겠다라는 기준도 그렇다. 그러므로 콩나물 몇개가 일치한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언성을 높이는 것은 무리다.


4. 순전히 본인의 무식으로 착각하는 경우


음악은 장르마다 고유의 진행, 자주 쓰이는 음색 등이 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I)팝송은 어느 곡이다 다 비슷하다.


II)누가 얘기해 주기 전에는 김건모와 신승훈의 노래를 구별 못한다. 


III)각 장르별로 아는 아티스트가 3명 이하 등의 기준에 해당된다면 누구 누구 노래는 표절이니 하는 얘기는 안 하는게 좋을 것 같다. 비틀즈의 'Help'를 딥 퍼플이 느리게 연구한 것을 듣고는 "이거봐라...이상한데...?"하는 것은 애교로 바줄 수 있으나 전기 기타가 꽈꽝하며 시작한다고 해서(하드록은 거의가 리프라고 불리우는 기타의 순환 멜로디로 시작한다) '으흠, 역시 우리나라 가수는 표절을 많이 하는 군'하는 정도라면 명예훼손에 해당된다.


5. 샘플링의 경우


샘플링은 디지털 기술의 개가이다. 아트 오브 노이즈가 이 기술로 살짝 문짝 닫는 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 등을 샘플링해 음악(소음?)을 만들어 내자 세계는 "음악의 개념 자체가 바뀐다.","이것이 미래의 음악이다."하고 흥분했다. 그러나 샘플러는 현재 남의 판을 그대로 샘플링해 자신의 음악에 삽입하는 기술로 더 많이 사용된다. 이 경우, 그것이 예술적으로 가치있는 일인가 하는 것은 개인의 판단 문제일 뿐이다. 미술의 경우에도 다른 이의 작품에 덧칠히거나 잘라 붙이는 것을 창작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문제는 합법성의 여부로서, 원작자의 승낙을 거친 것인지가 중요하다. 국내의 경우에도 인기 듀엣의 곡에 들어간 여성 흑인 코러스의 "워-우-어"하는 소리가 무단 샘플링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합법적인 경우 표절의 문제는 없다.


표절 곡을 고발하고 구입을 거부하자


자, 지금가지 생사람 잡을 경우를 대비한 식별 요령이었으니, 이제 진짜 표절을 구분하는 방법이다. 비참하게도 이것은 매우 간단하다. 노래 처음부터끝까지 완전히 똑같고 반주음색까지 똑같은 노래만 찾으면 된다. 이미 표절은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아니라 전부를 잔인하게 베껴 대는 곡들이 수두룩한 상황이다. 짜깁기 정도는 양반이고 '통째로 베끼기'만 찾아도 다 못찾는 상황이다. 물론 표절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대중 음악만의 일도 아니긴 하다. 뽕짝이 가요의 주류를 이루던 당시 일부 작곡가들은 일본 방송이 잡히는 포항이나 부산 등지로 내려가 귀에 들리는 것은 닥치는 대로 짜집기를 해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전에 출품해 입상한 미술 작품이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진 찍은 듯 베낀 것이었다든가, 유명 작가의 소실이 표절시비에 오르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가요의 경우, 그 영향범위가 무제한적이고 대상층이 넓다는 점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한다. 각 국간의 문화접변 중 가장 침투력이 빠르고 직접적이라는 것 때문에 문화 수출을 위한 첨병 역할을 한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가요계에 자신들의 노래를 표절한 히트곡들이 범람하는 것을 느긋하게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신을 닮게 만들어진 인간은 그에는 못 미치지만 유에서 유를 창조함으로써 신과 닮아간다고 한다. 창작은 그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과정 자체이다. 창작의 고통 자체가 예술의 거의 전부이다. 이를 외면하고 달콤한 결과물에만 집착하는 자들을 결코 예술가라 부를 수 없다. 표절은 단호히 얘기 하자면 도둑질이며 범죄다. 그것도 국가의 문화를 파괴하는 파렴치한 반칙이며, 역사 앞에 죄를 짓는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제 대중은 깨어나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절'이라는 범죄의 공범자가 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며 그럴 권리가 있다. 분명히 표절이라 생각되는 


곡들을 서로에게 알리며 구입을 거부하고, 각 매스컴과 PC 통신들의 공공 매체에 고발하는 등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차원을 벗어나 앞으로 나설 때가 왔다.


글 : 신해철 (그룹 N.EX.T의 리더 겸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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