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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앨범을 거꾸로 들으면 `피가 모자르다'는 등 괴이한 소리가 난다 하여 난리 법썩을 떨고 있다. TV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증명을 하며 그것이 거짓임을 밝히고 있음에도 좀처럼 믿으려 들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런 기이한 현상이 생긴 것일까? 이에 대한 신해철의 예리한 분석과 음악인으로서의 소감을 들어보자.(기사中 쓰인 사진들은 악마주의 음악과 관련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글. 신해철(N.EX.T의 리더 겸 보컬)


요즘엔 때 아닌(정말 때 아닌) 사탄의 음악이니, 레코드를 거꾸로 들으면 악마의 소리가 나오느니 하는 얘기가 한바탕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 중에는 필자와 관련이 있는 내용도 있는 모양이어서(`날아라 병아리'를 거꾸로 들으면 `병아리 내가 죽였다'하고 나온단다) 녹음 작업에 지친 나에게 웃을 수 있는(비웃음임)시간을 마련해 주고 있는데, 막상 십대들 중에는 '80년대 초반 전국을 휩쓴 `볼펜 귀신 부르기'만한 충격을 받는 이들도 있다 하고, 사탄의 `사'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일부 기성 세대 중에서는 문제의 진상을 파악하여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마치 이것이 실제 종교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사실인 것처럼 확대/왜곡하여 선교 아닌 선교의 방법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마저 있는 모양이라 기독교와 록 음악, 이 두 가지의 발상지인 서양에서보다 더 극성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특정 종교의 이야기는 최소한으로 하도록 하자. 음악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신을 찬양하기 위한 도구인가 하는 문제까지 끼어들면 결론이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신문 지상이나 방송 등을 통해 보도된 이 백워드 사건의 내용이 이외에도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영역을 극대화하여, 이 단순한 사건 이면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두서없이나마 짚고 넘어가는 게 오늘의 숙제이다.


사타니즘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다. 사탄을 신봉하며 그 상대적 개념인 신을 증오하고 해괴한 의식(흑 미사)을 행하는 자들도 있다. 유아 납치, 살해 등의 범죄까지 저지르는 극단적인 미치광이들이 있는가 하면 의외로 이론 체계를 갖추고 있는 부류들도 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앤톤 스잔돌 라 베이의 사탄 제일 교회 등은 유명하다. 20세기 들어 서구 기독교계의 무시무시한 지옥 개념에다가 할리우드의 싸구려 괴기 영화 이미지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악령의 이미지까지 겹쳐져 `사탄'은 시각적인 이미지까지 갖추고 실제화했고, 이는 어떤 방향이건 화제성만 있으면 돈과 직결되는 자본주의의 특성과 결합, 많은 헤프닝이 벌어졌다. 사타니즘을 신봉하는 뮤지션들이 있는가? 답 : 그렇다. 상당수의 록 뮤지션들이 그것을 공언했고 상당수는 의심을 받았다. 자, 이상은 여러분들도 대부분 알고 계시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유독 국내에서 무시되고 있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본 시각을 소개한다. 사타니즘과 일부 록 음악이 결합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의 진행이 정-반-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변증법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가지가 모두 `반', 즉 anti에 해당하는 유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록 음악이 특유의 반항 정신을 상실한 대가로 오버그라운드의 중요한 상업 음악으로 자리를 잡았고(심지어 스래쉬 메탈마저) 이에 대한 반발로서 얼터너티브가 등장하고 있지만(이 얼터너티브마저 강력한 상업성을 확보하고 있는 중이다), 초기의 록은 문화의 주체가 아니라 문화의 이단아였을 뿐이다. 즉 록 음악은 거의 모든 장르가 `언더그라운드에서 발생-상업적 영역 확대-대중과 타협-오버그라운드화'의 과정을 거쳐왔다. 그 과정에서 서구 문화와 사회의 정체성을 타파하는 데 기여함은 물론 영, 미를 중심으로 국보적인 자랑거리로 등장했으나 자본주의와 영합, 상업성을 획득하는 데에서의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그 중 특히 하드록 계통의 음악은 그 강렬함과 파괴적인 특성에 얹어보낼


가사로서 자극적인 내용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노골적인 섹스, 폭력적인 묘사와 더불어 반 기독교적인 내용 역시 섹스와 폭력만큼이나 상업적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각광받았고 그것은 현실화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사회 현실과 서구의 그것을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특히 미국 사회에 끼친 월남전의 영향과 당시 기성, 보수에 대해서라면 이유없는반항이 정당화되었던 젊은이들의 성향, 국가와 신이 보여준 현실 세계에 대한 환멸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극단적인 메시지들이 나온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종교는 거의 대부분 기성 세대에 의해 주도되면 보수적인 사고를 정당화하고 젊은이들의 순종을 요구한다. 당연히 당시 록 뮤지션에게 공격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서구의 기독교인 숫자는 우리와는 달리 감소 추세에 있으며 이를 대치하는 자리로 불교, 유교, 인도 종교류 등과 특히 흑인 사회에서의 이슬람 등은 증가 추세이다. 즉, 전쟁과 가치관의 혼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종교의 부재 현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는 뮤지션들에 의해 사타니즘은 매우 싸구려의 형태로 록에 유입되었고(스타가 되기 위한 경쟁이 우리 나라처럼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 실제로 사타니즘 자체에 심취한 뮤지션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제 6,70년대에 악의 사제니 세계를 파괴하라느니 따위의 유치한 가사를 외치던 로커들은 커가는 자식들 보기가 부끄럽다느니 하며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시절의 모습들이 성공을 위한 쇼였음을 인정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왜 소위 사탄주의 음악을 듣는가


뭐, 첫째는 정말 사탄 신봉자라느니 하는 이유에서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만드는 이도 정말 그런 이유에서 만드는 작자들이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 이면을 또 보자. 인간의 심리란 정말 묘한 것이어서 고통과 쾌감의 영역이 헛갈릴 때가 있다. `변태'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고, 간단한 예로서 가려운 곳을 긁을 때의 느낌만 해도 그렇다. 공포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필자로서는 정말 이해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피가 튀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 공포 영화를 돈 주고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인간의 이런 면 때문에 사탄주의가 상업적인 가능성으로 대중 음악에 유입된 것이다. 도대체가 블랙 사바스의 노래에서 악마의 웃음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웬지 모르게 사탄주의라느니 하는 것보다는 할리우드의 싸구려 괴기 영화 한 편이 생각날 것이다 (메시지가 그렇다는 거지 뭐 그 불후의 명 리프를 깎아 내릴 생각은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정의의 주인공보다 때로는 악한을 선호할 때가 있다. 삶의 룰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것을 멋대로 해 보고 싶은 인간 내부의 폭력성, 그것에 호소하는 것이 사탄주의 음악과 할리우드 폭력 괴기물 영화다. 이 두가지의 공통점은 잘 사용하면 대리 만족으로 삶의 쌓인 부분 을 해소할 수 있지만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고(물론 성인에게도 정신 연령이 낮은 사람은 세계 각국 어디에나 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에 매달리게 되어 잔잔한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감각이 무디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초보 헤비메탈 매니어는 메탈 이외의 것은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고 할리우드의 영화에 물들면 프랑스 영화는 하품이 나서 못 보게 된다. 마치 인공 조미료가 잔뜩 든 인스턴트를 즐기는 사람이 진짜 미식가가 될 수 없듯이. 인생을 그렇게 폭 좁게 사는 건 불행하다.


정말 심각한 종교적 문제인가


기독교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탄의 개념 자체가 그 안에서 나온 것이고 타종교에 비해 대단히 특이하다. 펄펄 끓는 불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는 유치한 중세의 지옥 개념도 수정되고 있는 상황에 성경 가운데에서도 이단인 외경의 개념을 근거로 사탄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문제시하는 것은 보수적인 종교계에서도 고운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기독교의 핵심인 사랑이 아니라 공포로 대중을 다스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종교 음악은 강렬한 비트를 배제하는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비트가 거의 없는 뉴 에이지 음악이 등장하자 각 종교는 미래의 이상적인 음악으로 이 우아한 음악을 환영했다. 그러나 뉴 에이지가 요가, 명상 등의 동양적 종교에서도 득세하자 일부 기독교는 태도를 돌변, `이런 종교들이 누구나 수련하면 자신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이단'이므로 뉴 에이지 음악은 사탄의 음악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음악의 장르 이름인 뉴에이지가 사탄주의 음악을 총칭하는(메탈을 포함하여) 사상적인 명칭으로 둔갑하는 일이 생겼다. 팝 음악 전문가들이 한숨을 쉬는 것도 동정할 만하다. 그러니 불교는 우상 숭배, 마호멧은 사탄...하며 사탄이라는 이름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것은 예술의 입장에서는 두려운 일이다. 신의 이름 아래 수많은 예술가들이 탄압받은 중세의 일이 사탄의 이름 아래 재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려 깊고 현명한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닌 것이다.


과연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가


미국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각종 심의 제도에 의해 메시지가 제한되며 외국 록 밴드의 공연이 불가능한 우리 나라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는 있을지언정 사타니즘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우려는 전무하다. 자, 여기서 한 가지 문제를 더 생각해 보자. 미국에서는 가장 신뢰 받던 텔리비전 전도사들의 거의 전부가 한꺼번에 섹스 스캔들로 사임한 적이 있다. 최근 집단 자살 소동이 벌어진 종교들(한국의 `오대양'포함)이 모두 겉으로는 기독교 교파의 외양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 이 모든 일들이 모두 신의 일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영역에서 벌어진 잘못인 것이다. 세계 대전 당시 각국의 교회는 신의 이름으로 자국의 군대를 축복하고 전장에 나아가 신의 정의를 실천하라 했다. 그것이 신의 정의였던가? 인간의 정의였을 뿐이다. 일부 록 음악이 부도덕하며 사탄을 들먹인다고 해서 그것이 사탄의 일인가? 인간의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타니즘이든 무엇이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것이 실정법을 벗어나는 행위를 저질렀을 때만 `인간의 이름으로'제지하고 처벌할 수 있다. 그것을 신의 이름을 빙자해 처벌한 일이 역사적으로 존재했었다. 중세의 마녀 사냥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집단적 광기'였을 뿐임이 판명된 이 사건으로 수많은 억울한 희생자들이 속출했었다. 또한 그 이면에는 무지한 민중층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권력과 종교의 이해 일치가 있었다. 그러면 `신의 이름 아래'심판은 언제 오는가. 그것은 신이 하실 일이다. 인간은 알 수도 없거니와 그것을 사칭할 수도 없다.


마녀 사냥의 재판-백워드 매스킹


음반의 회전 방향을 거꾸로 듣고 그 `음향'에 의미를 부여하는 백워드 매스킹(Backward Masking)이란 마녀 사냥의 재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음악가가 고의적으로 역회전시의 음향을 계산하여 의미를 집어넣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너희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의 극치다. 찬송가를 거꾸로 돌려도 그런 류의 음향은 수없이 발견되며 악하거나 어두운 이미지의 단어를 닥치는 대로 조합하여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하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이 예외없이 가능하다. 바하의 위대한 명곡-아마도 수많은 사람을 크리스천으로 개종시켰을-`할렐루야'를 들어도 그런 현상은 일어난다. 십자가 등의 성스러운 표시를 거꾸로 회전시키는 것이 악마의 상징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음악을 거꾸로 들으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궁색한 변명도 있는데, 그렇다면 사타니즘 음악을 거꾸로 돌리면 성스러운 음악이 나와야 할 게 아닌가. 마찬가지로 거꾸로 돌리면 사탄의 메시지가 나온다는 서태지의 음악은 천사의 음악이란 결론이 나온다. 자, 여기서 백워드 매스킹의 `과학에 의한'정체를 밝힌다. 괴기 영화를 보면 음악이 천편 일률적으로 비슷한 코드의 진행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특정한 음정의 진행이나 음향은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음반을 역회전시킬 때 나는 음향(리버스 사운드)는 인간에게 공통으로 신비감과 막연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이 상태에서 대부분 "이런 이런 단어가 나오니 들어봐"하면 실제로 그렇게 들린다. 물론 그런 단어가 우연에 의해 실제로 들리는 경우도 있지만 문장이 너무나 억지스럽다(이런 단어가 나온다 하는 `사전 암시'의 위력에 대해 이런 예를 들겠다. 밥을 먹으면서 나 지금 이거 먹으면 틀림없이 체할 텐데 하고 열 번만 중얼거려 보라. 백발 백중 체한다. 이것이 인간의 신념의 마력?...


인 것이다. 잠깐... 시험은 하지 말기 바란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필자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그러므로 많은 분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나의 대답은 `노'다 한방의 극약인 비상은 때론 죽어가는 사람을 늘리기도 하고 사람을 살해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모든 일은 음과 양이 있는 법이라 밝고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찬 세상은 있을 수도 없지만 좋은 것만도 아니다. 악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선을 구별하는가. 자신의 주관이 확실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기성 세대가 할 일은 젊은이들에게 해가 될 요소들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주관에 따라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일회용 처방일 뿐이다. 매스컴이 떠들썩하게 이 사건을 보도하는 모습을 보며 그 흥미 위주의 치졸한 보도가 낳을 희생자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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