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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Oct
사랑의 날개는.. 사랑의 날개는 너에게 9작성자: 관리자 조회 수: 2668
1990. 12. 29. 날씨, 맑음
여러분, 포기라는 말을 두려워하십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하다가 잘 안될 때 포기가 두려워 그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너무 쉽게 포기하지 마 라는 추고를 너무 쉽게 해줍니다.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빨리 포기하는 것이 대단한 용기일 때가 있습니다. 앞의 일에 연연해하지 않고 다음을 위해 접어두는 것, 그건 말 그대로의 포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자신의 일을 과감하게 결정하는 용기일 겁니다. 자, 포기해 봅시다.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갑시다. 여기는 밤의 디스크쇼 서울, 밤별이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는 중입니다.
1990. 12. 30. 날씨, 차가운 바람 그러나 창문에는 햇살이
감사합니다. 날씨는 그런대로 견딜 만큼만 추웠고 연탄과 기름을 아끼느라 줄여놓았긴 하지만 밤은 그런대로 훈훈했습니다. 식탁에는 평소때의 반찬보다 한가지 정도 더 맛깔스런 반찬이 올려져 있었고 식구들은 다들 한그릇씩 밥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둘러앉아 과일과 차를 나누었구요. 물론, 몇가지 걱정은 있었습니다. 합격자 명단이 입수되었다는 텔레비전의 자막이 나가자 다를 긴장하며 작은 댁에 합격여부를 묻는 전화를 걸었고, 어머니는 물가불안이 심해질 거라는 말에 혀를 쯧 쯧. 그러나 정말 감사합니다. 나날이 각박해져 간다는 세상인심 속에서 우리 식구들은, 구세군 자선냄비에 다들 할 수 있는 만큼 동전을 넣을 수 있었고, 작은 선물을 식구들끼리 나누었습니다.그리고 밖은 여전히 춥고 또, 어려운 이웃들은 여전히 어렵게 이 계절을 보내고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평범한 우리 식구들 조용함 속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해주셔서 우리 식구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1990. 12. 31. 날씨, 정말 잘 모르겠음
지금, 우주정거장에는 우리가 쏘아올린 인공위성이 가나긴 여행길에 잠시 쉬고 있을 겁니다. 지금, 지하 수천 미터 지하광맥에서 아주 반짝이는 보석들이 만들어지고 있겠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에는 정다운 등불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왔던 그리운 얼굴 중의 가장 그리운 얼굴에게 축복의 말을. 그동안 고마웠다. 그동안 난 네가 있어서 참 좋았어. 그리고 함께 손을 잡으며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들과 사라져가는 젊음의 한 순간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나 함께 있을 서로들에게!! 추억과 함께 미래로!!
제3부 그러나, 오늘은 이별
1991. 1. 1. 날씨, 오늘만큼은 쾌청
"나는 나이면서도 나로서 살지 않겠다. 나를 뛰어넘은 새로운 나, 나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발전하는 나. 살아가는 건 언제나 여렵지만, 어려움은 나의 친구. 세상 어려움과 친구하며 나는 나이면서도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나로 살겠다." 오늘, 나는 나를 조용히 만났다. 나를 만나면서 나의 결심도 함께. 올해 나는 좀더 차분히 사랑하는 나의 악기 곁에서, 내 마음 안에서 울리는 나의 노래를 찾아가겠다. 착한아들, 착한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좀더 많이 만들겠다. 내가 젊다는 것을, 내가 나에게 보여주겠다. 학교에도 나가보고 싶다. 강의실에 앉아 책을 보며 노트필기도 하고, 텅빈 강의실에 앉아 있고도 싶다. 교정을 천천히 걸어나보며 휘파람도 불어보고 싶다. 새해엔 모두에게 안녕을 나에겐 언제나, 거창한 건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 조용히 새해를 맞으며, 모두의 안녕을 빌어보는 시간으로 보냈다.
1991. 1. 2. 날씨, 맑음
녹음방송
나는 지금 스튜디오에서 밤디 진행해야 하는 시간에 집에 앉아 밤디를 듣고 있다. 이틀을 쉬자고, 우리는 녹음방송을 준비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라니, 이건 영락없이 연말스케줄에 시달려 피곤에 쩔은 목소리가 아닌가. 그래도, 신년방송이라,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아이쿠, 저게뭐람, 차라리 하품이나 하고 있어라, 있어. 세상에, 또 저건 무슨 얼굴 붉어지는 소리를 나는 사실, 내가 해놓고 내가 조용히 듣고 있지를 못한다. 나는 듣다가 몇번이나 소리를 줄였다 높여다 했다. 좋은 DJ이란, 어떤 DJ일까? 새삼스레 나는, 좋은 DJ란 어떤 건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루 두시간의 방송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내가 잘해내고 있는가-하는 내 반성일 것이다. 연륜도 아직 세상에 대하여 뭐라고 말할 만큼 되지 못한 나는 그저, 정직하게, 내가 느끼고 느낀 것을 전달하는 것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갈 뿐인 것이다. 나는 잘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새해부터 자신이 없다니, 하루하루 배우고 그저 나가면 될 것 아닌가.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모래시계를 본 적이 있는가? 모래시계는 삼각형의 병이 아래, 위 두개로 이어져 있고 그 안에 모래가 담겨져 있다. 위에 모래를 달아놓으면, 시간이 지나가면서 모래가 아래 삼각형의 또 다른 병으로 흘러내리게 된다. 그러니까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되어 다시 모래는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자, 그럼, 모래시계 속에 담긴 시간은 어떻게 될까. 아래로 떨어졌던 과거의 시간이 현재로 되돌아 떨어지게 되는데...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모래시간 속의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또 미래가 되는 순간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우리의 시간이라는것도 이 모래시계처럼 거꾸로 해놓으면 언제나 과거로, 현재로, 혹은 미래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단 한순간의 오늘만을 볼 수 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속으로 우리는 가고 또 가고 있는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에게는 매일 편지와 선물을 보내는 팬에서부터 집에 전화를 걸거나, 심지어 집으로 찾아오거나, 콘서트 때마다 와서 나를 환영해주거나, 내가 출연한 방송이나 무대에서의 내 모습을 찍어와서 건네주거나 하는, 암튼, 팬들이 있다. 나는, 언제나 그 분들에게 감사한다. 어쩌면 인기가수로서의 내 생명은 여러분들이 나에게 보내주는 사랑과 함께 시작되고 사랑이 끝남과 동시에 끝난다. 어떤 때는 인기-라는 것만 생각해도 우울해진 적도 있었다. 선배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기도 한때야. 팬이라는 건, 얼마나, 쉽게 변하는 거라고. 나중에 지나보면, 인기도 가고 건강도 가고, 방송국에 나와도 누구 하나 아는 척도 안하지." 신제로 나도 왕년의 인기가수였던 선배들이, 방송국 로비 의자에 앉아 무료하게, 혹은 쓸쓸하게 담배를 피워대고 있는 모습을 본 적도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 가수들의 인기는 이, 삼년 가면 오래 가는 거라 하지 않는가. 지금 나는 한창 바쁘고 이곳 저곳에서 찾는 사람도 많지만 시간이 흘러, 인기가 없어지면...? 그러나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덜하게 되었다. (전혀 안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라 하겠지?) 매일, 밤디 식구들과 만나면서 나는 이런 생각보다 더 발전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우리 밤디 식구들-, 매일 두 시간 동안 내 목소리와 좋은 음악을 들어주는 우리 식구들-조용히 여러분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인기란, 얼마나 밖으로 드러나는 물거품 같은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 많고 또 억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여러분을 붙잡으려고 가까이 더 가까이 내 진짜 마음을 숨기고 간다면 여러분은 나에게 가까이 오겠는가.제발 가라, 가버리라고 하겠지. 그렇다.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면, 그 뒤의 판단은, 여러분이 하게 될 것이다. 우리 대장 김철진선생님의 말씀. "라디오가 얼마나, 나라는 걸 그대로 드러내는 건지 아니? 네가 피곤하고 하기 싫은 날은 그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거야." 사람들은,내가 감기가 들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정말 금방 안다. 내가 짜증이 난 날은,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숨기려고 해도 알고, 내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으면 정말, 정말 금방 안다. 인기가수는 자칫, 대중과 실제로는 멀어질 때가 있다. 인기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고 그런다. 그러나, 나는, 가수이면서 DJ이므로, 그럴 수는 없다. 나의 심경이 편안한가, 편안하지 못한가를 금방 알아차리는 여러분 같은 식구들과 함께 스물셋이라는 나의 나이답게 그냥 이 시간을 지낼 것이다. ON AIR. 불이 들어왔다. 이제 나는 다시 헤드폰을 끼고 뭔가 말을 시작해야 한다. 여러분, 이제 시작합니다. 오늘 저는 편안한가요? 아닌가요? 한번 알아맞춰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