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 고등학교시절
원색의 '요란뻑적지근한' 차림새로 으리으리한 악기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적어도 당시 내가 그리고 있던 그룹의상이었다. 물론 이것은 무수한 팝송잡지에 실린 외국 헤비메탈이나 록그룹의 사진들을 많이 본탓이었겠지만. 아무튼 상상과는 동떨어진 이 연습실에는 기타 드럼 키보드 등이 가까스로 구색을갖추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를 데려갔던 재용이는 내가 실망해하는 빛을 보았는지 "왜 마음에 안드니, 다 그런거야" 라며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연습실을 둘러보며 뭔가 꿈이 깨지는 것같은 느김을 받고 있는 사이 또 두 녀석이 들이닥쳤는데 얼굴을 보니까 기가 막히게도 둘다 영훈 국민학교 내 동창생들이었다. 이런 곳에서 음악을 하는 동창생들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어쩌면 이들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내가 지금 이렇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수 밖에 없게 됐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들의 모임이 각시탈이라는 그룹이었는데 각시탈은 원래 경복고등학교에서 오래전 부터 내려오던 음악서클 명칭이었다.. 당시 키보드를 쳤던 김재홍 (나중에 대학때 '무한궤도'로 함께 활동)등 동창 2명이 경복고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그룹 이름을 그냥 각시탈이라고 붙였다는 것이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그들은 나를 보자 "각시탈에 들어오고 싶은 생각이 있는 모양인데 그러면 누구나 오디션(?)을 받아야 한다"며 나에게 기타를 메고 노를 한 곡조 뽑아보라고 했다. 오디션 결과는 물론 엉망(?)이었지만 가입을 이미 결정해놓은 상태에서 형식적인 승인 절차(?)에 불과했던 만큼 나는 그날로 각시탈 멤버가 될 수 있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그룹이었지만 그래도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됐다는게 여간 뿌듯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이제는 내가 그토록 동경해온 록그룹연주의 흉내를 낼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한 셈이었다. 이 각시탈이 머리털나고 처음 속한 그룹으로 이때부터 나의 그룹활동이 시작됐다.. 당시 우리들은 음악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같이 헤비메탈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라고할만큼 헤비메탈을 좋아했다. 그래서 늘 헤비메탈에 매달 렸는데 턱없이 부족한 연주실력으로 헤비메탈사운드를 내자니 정말 그것은 연주가 아니라 일종의 소음생산이었다..나보다 좀 먼저 그룹에 속해있었던 친구들이 연주실력도 내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방과 후 길음동연습실에서의 외국의 헤비메탈이나 록그룹의 음악을 본떠 연습에 열중하다가 아래층에서 소음에 참다못해 뛰쳐 올라온 사람들한테서 협박(?)을 당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너희들 더 이상 시끄럽게 하면 악기고 뭐고 모조리 부숴버리고 쫓아내 내겠다." 방음 장치가 전혀 안돼 있는 그런 곳에서 그처럼 막무가내로 악기를 두드려댈 배짱이 어디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정말 우리때문에 주위사람들이 꽤나 괴롭힘을 당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