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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Oct

사랑의 날개는.. 사랑의 날개는 너에게 4

작성자: 관리자 조회 수: 2249




1990. 10. 20. 날씨, 어둡고 가끔 해가 나왔음 


요즘 나는 너무나 바쁘다. 이곳 저곳의 스케줄, 인터뷰, 사진촬영, 사람들은 요즘의 나를 한창 줏가가 높아가고 있는 신인가수라고 한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나를, 그냥 신해철이라고 아무 부담없이 좀 뭣하게 말하면, 옆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편하게 부른다. 그리고 밤 열시마다, 밤의 디스크쇼. 열시에 방송이 나가려면 최소한 아홉시에는 가서 방송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스텝들, 우선 우리 대장 프로듀서 어저씨, 선곡과 음악을 담당하는 분, 일반원고를 쓰시는분, 그리고 나다. 아홉시 삼시분이면 거의 모든 방송준비가 끝난다. 선곡에 따른 레코드찾기,방송원고, 시그널음악, CM테이프, 그리고 그날 선정된 엽서들. 모든게 준비되면 우리 스 ?들은, 스튜디오에 와서 스탠바이를 한다. 우리 대장은, 선곡된 노래 순서대로 레코드를 배역하고 시그널 음악과 CM테이프를 순서대로 걸어둔다. 나는 내 앞에 놓여 있는 엽서를 우선 읽어본다. 오늘은 어떤 엽서가 와 있는가,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러분의 반응은 어떤가, 그리고 첫 엽서는 어떤 걸 골라 소개할 것인가. 그날 초대손님이 있으면 방송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인터뷰를 해보고 사전에 초대손님에게 무슨 질문을 해서 그 시간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하는 등등. 오늘, 우리 대장은 스 ?들을 모아놓고 대장이 평소 때 생각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해철아-" 라고 대장은 나를 부른다. 그러나 난 "예, 대장님-"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얼떨결에 "선생님-"이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젠장, 그냥 대장이라고 불렀으면 괜히 어색하고 쑥스러운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암튼 사람은 첫단추를 잘 끼워야 된다니까. 바보. "난, 방송이라는 건, 이러면 너무 거창하니? 아무튼, 특히 심야 방송이라는건,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넌 어떠니?" 대장은 착하다. 늘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라고 물어준다. "저-, 나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대장은, "그리고, 듣다가, 그냥 잠이 스르르 들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넌 어떠니?" 잠이 스르르 들다니? 남은, 열심히 밤늦게까지 방송하는데 잠이 들어. "따뜻한 음악이 나오고, 친근한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따뜻하게 잠이 든다는 거. 그게 심야방송이야" 그러면서 대장은 레코드를 올리려고 뒤로 돌아섰는데 그때 내가 본 대장의 어깨. 우리 대장은, 어떤 젊은 시절을 보냈길래 따뜻한 음악과 친근한 음악과 친근한 목소리와 함께 잠이 들기를 원하지? 우리 대장은 키가 작고 귀엽게(?)생겨 여고생 팬들이 '둘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말썽피우는 귀여운 둘리가 아니라 길동이에게 쫓겨나 집의 뒤뜰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과거에 두고 온 엄마를 그리워하는 둘리가 생각났다. 둘리의 귀여운 눈망울에 맺힌 눈물 그러다가 요즘, 내가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건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었다. 바쁠수록, 좀더 차분해져야 하는데 그래서 나는 가만히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요 대장, 듣다가 가만히 따뜻해져서 꿈나라로 갈 수 있는 방송을 한번해보자구요. 


1990. 10. 21. 날씨, 가을날씨답게 맑고 청명했음 


내가 본 이런 이야기 하나 오늘 일기에는 적어야겠다. 골목이나 아파트 공터에서 볼 수 있는 회전목마 할아버지. 목마 위엔, 동네꼬마들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목마를 타다. 다 낡은 회전목마. 목마는 그냥 끄덕이며 노래에 맞춰 돌아갈 뿐이지만, 어쩐지 그 회전목마의 회전수에 따라 아련한 추억의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혹시 경험해 본적이 있는지.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나가는 나는 아니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에 회전목마 할아버지가 들어오면서 나에게는, 그 할아버지가 나오셨나 안 나오셨나를 살피는게 그냥 일이 되어버렸다. 안나오시면 왜, 괜히 섭섭해지는 거 있지. 그리고 목마할아버지 옆에는 구두수선을 해주는 신기료할아버지. 조그만한 천막 안에 연탄불을 피워두구 신발 몇 켤레 기워주시는 신기료할아버지. 회전목마나 신기료 같은 것들은 이미 초라한 밥벌이가 되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간 지 오래된 것 같은데, 마치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의 무슨 풍물인 양 그 분들은 우리 아파트 구내에 들어와 있었던 거다. 언젠가, 그 앞을 지나가다가 두 분이 신기료할아버지의 생업으로 피워둔 연탄불에서 라면을 끓이시는 걸 보았다. 생업의 연탄 위에서 기분좋게 끓고 있는 라면-. 나는 괜히 코끝이 찡해왔었다. 그러나 나는 불안했다. 고층아파트 옆의 회전목마와 신기료장수는 어쩐지, 정말 어쩐지 안 어울린다. 아파트의 아이들은 레고블럭을 가지고 놀거나, 백화점의 놀이시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빌린 만화영화를 봐야 제격이다. 그리고 구두를 기워 신는것. 이런 일은 거의 없다. 낡은 구두는 그냥 버린다. 한철만 지나면 유행에도 떨어지고, 그리고 옷이나 가방에 맞는 구두가 여러켤레이기 때문에 기워 신을 정도로 구두 한켤레로 버티는 아파트 주민은 없다. 그리고 정돈되고 깨끗한 아파트 주변에는 잘 가꾼 회양목이나 피튜니어 꽃단지가 있어야 제격이지 칠이 벗겨져 나간 낡은 회전목마와 또 낡은 구식녹음기에서 들리는 동요, 그리고 초라한 천막과 연탄불, 이건 안 어울린다. 안 어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극성맞은 아파트 여자분들 눈에 거슬리기는 시간문제. 아파트 주차장에 주민의 차가 아닌 다른 차가 조금만 주차해 있어도 당장 빨간 페인트 칠을 해버리는 인심 아닌가. 아니나 달러. 어느날부턴가 두분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사건전말이 궁금해진 나는, 밤에 어슬렁거리며 비디오가게 에 내려갔다. 비디오가게 아저씨는 이 아파트 동네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으니까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람 좋은 비디오가게 아저씨는 또 어쩌면,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내게 이일을 전해주실지도 모른다. 난, 사실 그게 중요했다.할아버지들의 입장에서 이 일을 전해줄 사람. "낸들 알아. 암튼, 이동네 여편네들 성화는 알아줘야 한다구. 좀 벌어 연탄이라도 들여두게 놔두지. 동네 지저분해진다고 진정을 했대나, 뭐래나. 철거단속반들도 마지못해 하는 거 같더라구. 그렇지. 철거단속반들고 다 없는 사람일 텐데 있는 여편네들 성하가 눈꼴시였겠지. 나도 터가 좋아 이 동네에 살고 있지. 사람 같지도 않은 놈에것들 틈에 끼여 사니 이거 사람구실을 할 수나 있어야지, 내 참." "단속반까지 나왔어요?" "글쎄, 그렇다니까. 한바탕 난리가 났지. 그래도, 그양반들, 순순하더구만. 그리고 목마영감은 그냥 짐을 챙기는데 신기료영감은, 짐 싸다 말고 울더래니까. 벌써 쫓겨다닌 지가 이태가 넘었다고 말야. 이제 어디 갈 데도 없것지 뭐, 아이고, 곧 날씨도 추워질건데 어디서 몸 부치고 살래나-" 비디오 두 개를 빌려 옆구리에 끼고 가게를 나왔다. 넓은 아파트 광장-, 하늘엔 별도 많아라. 근데, 저 별들은 하나같이 왜 반짝이지. 이 지상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야박한 일들이 수시로,수시로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목마를 읽어버린 아이처럼 목이 뜨거워졌왔다. 내가 목마나 신기료를 보면서 추억의 책장을 넘기는 일은 나에게는 감정의 사치쯤일 수 있지만 그 할아버지들은 그게 생계가 아닌가. 그 생계에는 또 몇 명의 식구들이 매달려 있을까. 나는 도시의 어는 한 귀퉁이에서 또 벌어질 야박한 일을 생각하며 우울해져 광장을 빠져나왔다. 빌어먹을, 그냥 반짝이기만 하는 별들아. 


1990. 10. 22. 날씨, 내 마음속의 날씨는 언제나 말게 갬 


방송을 진행하다가 문득 창을 내다보았다. 아파트가 강을 가리고 있다. 여의도 MBC의 FM 스튜디오는 칠층에 있다. 아파트만 없으며, 멀리서도 전망좋게 강이 보여야 한다. 그러나 강은 보이지 않고, 아파트만 보인다. 나는, 아파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 밤, 하늘 어딘가를 날고 있을 야간비행사들을 생각했다. 그 비행사들은, 밤중에 비행을 하며, 나처럼 문득 지상을 내려다볼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저기 켜진 불빛이, 한 잔의 커피와 따뜻한 빵이 기다리고 있을, 자신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외로움을 타고 있나보다. 내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고곡으로 흘러가지만, 어쨌든, 스튜디오 마이크 앞에 앉은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닌가. 혼자라는 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물론, 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나와 더불어 잠 깨어 있을 밤디의 식구들이 있을 것임을 안다. 그러나, 지금은 긴장되고 외롭다. 그리고, 저 아파트의 불빛 속으로 나도 스며들고 싶다. 오늘은, 나의 외로움에 대해 적고 싶다. 밤디가족 여러분, 여러분을 두고 외로워하는 이 못난 DJ를 용서하세요. 그러나 심야스튜디오의 외로움, 그 외로움에 대해 한번, 생각해주세요 


1990. 10. 22. 날씨, 흐리다가 한없이 투명한 바람들이 저 먼 나라에서 불어왔음 


아마 이맘 때쯤일 겁니다. 저는 친구랑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같이 노래를 하는 친구였죠.항상 맘이 잘 맞았는데 어느 사이엔가 우리 둘에겐 틈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노래란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 내는 것이라야만 진짜 노래라는 거였고 전, 노래란 자기만의 세계속에서만 진짜 울림과 진짜, 한없는 떨림을 갖는다는 거였죠. 우린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고 돌아서 오던 길. 인적이 드문 외진 길에서 저는 문득 노래를 들었습니다. 아주 작고, 낮은 그러나 나의 마음 어느 모퉁이에 온돌을 놓은 것같이 따뜻하게 스며드는 소리. 저는 가까이 가봤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엔 맹인딸과 앉은뱅이 아버지가 동전 몇 개를 앞에 놓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낡은 기타에서 들려오는 싸구려 반주 이제 막 어린애를 벗어난 듯한 앳된 목소리그곳에는 상처 입은 두 영혼이 각각 다르게 그러나 조화를 이루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사랑이었습니다.상처 입은 영혼들이 세상에 던지는 작은 꽃다발, 그걸 보고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저는 신해철입니다. 


1990. 10. 23. 날씨, 맑음 


이런 엽서가 왔었다. 해철오빠, 전 오늘 야자(야자는 야간 자율학습을 줄인 말)를 하다가 이어폰을 귀에 꽃고 밤디를 듣고 있었어요. 한창 열심히 오빠의 잠꼬대 같은 멘트를 듣고 있는데 제 앞으로 무슨 그림자(지옥의 그림자처럼 검은 그림자)가 어른어른하는 게 아니겠어요. 이어폰을 슬그머니 빼서 모른 척 주머니에 넣고(그때의 내 재빠름이란) 눈은 얼른 책으로 향했죠.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지옥의 끝에서 들려오는 듯한 음침한 목소리 "내놔" "...." "그냥, MBC 폭파해버리기 전에 내놔." "...." "밤딘지, 밤의 드스코숀지, 흔들어버리기 전에 내놔" 전, 거의 울상이 되어 라디오와 이어폰을 내놓았죠. 그뒤엔 묻지 마세요. 전 오늘도 물통을 들고 열번이나 넘게 수돗가로 갔다구요. 그리고 내 옷에선, 아휴, 화장실 냄새!!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서 


이런 엽서를 받는다는 건 사실 즐거운 일이다. 야자시간에까지 밤디를 듣다니...근데 한편으론 걱정스런 일이다. 걱정의 내용은, 즐거움의 내용과 똑같다. 야자시간까지 밤디를 듣다니. 왜 같은 내용 속에 즐거움과 걱정스러움이 교차하냐구? 즐거움은, 물론 DJ인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즐거움이다.이렇게 열심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온갖 난관을 물리치고 밤디를 들어주는 우리 예쁜 여고생, 여중생 팬들. 이렇게 열심히 들어주다니 더 좋은 방송을 해야지. 더 들어서 유익하고 편안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또 뭐,뭐,암튼,베스트 오브 베스트 방송을 해야지. 그러나 걱정스러움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야지시간이라면, 그것도 수업시간인데 공부는 안하고 라디오를 들어, 내가 아무리 심야방송 DJ지만, 이건 좀 심하다-, 하는 여러분들의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똑같이 하는 걱정.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나는, 자, 공부하시고, 섭섭하더라도 라디오는 끄세요-. 라고 말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니 없는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자, 공부 쉬시고, 이 시간은 라디오를 들으세요-라고, 은근히 공부를 방해하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DJ니까, 청치율 때문에 그런다구?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내가 그러고 싶은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야자시간이라니, 아니 밤 열시부터 밤의 디스크쇼가 시작되는데, 그 시간까지 심오세부터 십구세의 소년, 소녀들이 학교에 남아 있단 말인가!! 


2. 물론, 위의 말이 억지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럼, 그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대학은 누가 그냥 보내주나, 오오, 영광 있을진저, 우리의 대학이여. 


3. 그러니, 얼마나 갑갑하겠느냐 말이다. 그 시간까지 학교에 있으니, 무슨낙으로 살겠어. 


4. 그 시간에 공부 몇 시간 안한다고 사실, 대학 못 들어가는 건 아니다. 차라리, 라디오를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라. 볼륨을 높이고, 가만히 눈 감고 그 시간이나마 아무 부담 없이 시간 속에 몸을 내맡기는 게 능률적일 거라는 말씀!! 


근데, 이 이야기는, 정말, 우리끼리만 하는 이야긴데-, 심야만 아니라면, 난 꽝꽝 울리는 메탈을 자주 보내주고 싶다구.(우리 대장은 들으면 안됨) 리듬에 맞춰, 꽝 꽝. 지옥 같은 입시여, 멀리, 꺼져버려라-.근데 또, 나도 슬그머니 불안해지는 건, 이러다 우리 모두, 병원에 입원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여러분은 이럴 거다. DJ선생, 괜찮아요. 이 세상엔 입원해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멀쩡히 돌아다니며 정치도 하고 사업도하고 어디 높은 곳에도 앉아 있고 중요한 일도 결정하고 그러는데요! 자, 여러분, 아주 열심히 라디오를 들으시라. 그리고 가끔, 아주 까끔만 과감하게 라디오를 끄시라. 


1990. 10. 26. 날씨, 맑음 


마지막 가을날입니다. 이 가을, 가을의 수확을 기다려온 자에게 수확의 두려움을 알게 하시고 가을의 지나감을 애태우는 자에게 지나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깨우치게 하시고 다가올 계적을 두려워하는 자에겐 부디 부디 그 다음 계절의 따뜻함을 알게 하소서.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의 스물셋의 가을을 보낸다. 안녕. 나의 수물셋의 아주 바쁘고 바빠서 외로웠던 가을아. 나, 다시는 슬픈 표정으로 계절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제, 밤디가 있었던, 나의 스물셋은,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저의 가을에게 안녕이라고 말합니다. 내 영혼의 텔레파시 어디만치 왔니? 지금쯤은 어디니? 글쎄 정말 어디만치 왔을까. 그리고 지금쯤은 어디일까 밤 열시에서 열두시 사이. 여의도 스튜디오에 앉은 스물셋의 내 영혼이 나만큼 외로운 영혼인 너에게 묻는다. 


1990. 10. 28. 날씨, 푸른 하늘, 나, 햇살 눈부시다. 


아-.눈부신 저 햇살. 벌써 계절은 겨울로 향해 가고 있나.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도 벌써 겨울로 가고 있는가. 차고 시린 겨울로 향해 가고 있는가. 바쁘고 화려한 나의 가을도 저 먼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눈부신 저 햇살 나는 저 햇살 아래, 내 나이의 정직과 성실에 대해 다 드러내고 있었으니 사라져가는 계절아-, 그래도 나는 정직했으므로 참으로 아름다운 때도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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